측근 감싸던 다카이치, 결국 경질…정권 출범 후 첫 각료 낙마

  • '지지 안 한 지역 예산 삭감' 발언에 선거법 위반 의혹까지

  • 개각 한 달도 안 돼 사임…참의원 야당 결집에 감세법안 심의 부담

야나 가즈오 일본 농림수산상사진AFP연합뉴스
야나 가즈오 일본 농림수산상[사진=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야나 가즈오 농림수산상을 사실상 경질했다. 야나 농림수산상은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지역의 도로 예산을 삭감했다고 발언한 데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까지 받아왔다. 지난해 10월 정권 출범 이후 비위로 각료가 사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이 발탁한 측근을 감싸던 총리가 잇따른 의혹과 야당의 압박에 결국 경질로 돌아서면서 인사 판단과 위기 관리 능력에도 비판이 번지고 있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야나 농림수산상은 전날 밤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만나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국회 심의에 더 이상 지장을 줄 수 없다"며 사임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사표를 수리한 뒤 "임명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중순 개각 때 입각한 야나 농림수산상은 취임 한 달도 안 돼 물러나게 됐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5월 지역 자민당 모임에서 한 발언이었다. 야나 농림수산상은 자신의 지역구인 도치기현 나스카라스야마시와 나카가와마치를 거론하며 도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고 말했다. 해당 지역구의 두 지자체장은 지난 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야나 농림수산상의 경쟁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말 이 발언이 주간지에 보도되면서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지역에 예산으로 보복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실제 두 지자체의 도로 관련 교부금은 전년보다 줄었고 일부 도로 확장 공사도 중단되거나 연기됐다. 야나 농림수산상은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면서도 예산 삭감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토교통성도 예산 삭감 요구나 압력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예산이 확정되기 전 당시 국토교통성 고위 관료가 야나 의원에게 불려가 두 지자체의 배분액을 질문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토교통성은 당시 면담 기록을 작성하지 않아 예산 감소 경위를 둘러싼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다카이치, 유임 '고수'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야나 농림수산상의 유임을 고수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성과로 만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야나 농림수산상은 옛 아베파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당 징계를 받았다. 비자금 사건 연루 의원을 각료로 기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선거 지원 유세 때 그를 "나의 지혜 주머니"라고 평가할 만큼 신뢰를 드러냈다.

닛케이는 총리가 앞서 각료의 사생활 논란을 사퇴 없이 넘긴 경험이 있는 데다 자신의 인사 실패를 인정하기를 꺼려 경질 판단이 늦어졌다고 분석했다. 총리는 9월 개각 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닛케이에 "결정적인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경질하면 전례가 된다. 이를 피하고 싶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다. 과거 중의원 선거 때 야나 측이 지지자들을 셔틀버스로 무료 수송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유권자에 대한 이익 제공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다카이치 총리는 13일 국회에서 도로 예산 삭감 발언을 "정말 부적절하고 정말 '다사이'(촌스럽다)"라고 표현했다. 무료 버스 수송 문제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있다면 인사 조치도 주저하지 않겠다며 경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14일에는 야나 농림수산상의 해명도 흔들렸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사전 확인을 했다는 전날 답변을 바꿔, 버스 수송의 적법성이 아닌 회계 처리 방법을 문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과거 선거에서 수당을 받은 사무원들이 전화로 투표를 독려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공직선거법은 단순 사무를 맡는 사무원에게는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지만, 선거운동의 대가로 돈을 주는 것은 금지한다.

결정적인 압박은 참의원(상원)에서 나왔다. 야당 내 10개 정파는 14일 야나 농림수산상이 사임하지 않으면 문책결의안을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자민당과 연립 파트너 일본유신회는 참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야당이 결집하면 가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문책결의안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가결될 경우 법안 심의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닛케이는 특히 국민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야당 결집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이 당 간부는 야나 농림수산상의 사임이 소비세 감세 관련 법안 심의의 전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법안은 다카이치 정권이 이번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유신회 대표도 14일 "장관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밑에서는 자민당 참의원이 직접 결단을 압박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참의원 지도부 인사는 13일 밤 총리 관저 측에 전화해 "소비세 감세 법안 심의에 예정대로 들어가려면 야나 농림수산상이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며 14일 중 결론을 내라고 요구했다. 15일 후임을 임명하면 20일로 예정된 법안 심의를 일정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야나 농림수산상은 14일 밤 사표를 제출했다.
다카이치 대응 '비판대'

일본 언론은 이번 경질에 이르기까지 다카이치 총리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아사히는 총리가 도로 예산 삭감 발언을 '다사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문제를 야나 농림수산상 개인의 일로 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의 공정성과 유권자의 선택을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번 사태는 다카이치 정권의 위기관리 방식에도 의문을 남겼다. 닛케이는 총리가 국정 운영의 모델로 삼는 2차 아베 신조 정권에서는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이 위기관리를 맡아 문제 각료를 신속히 경질했다고 비교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측근은 이번 사태를 두고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상처를 줄이려다 오히려 키웠다"고 평가했다.

총리에게 쓴소리하기 어려운 '다카이치 1강' 구도도 결단이 늦어진 배경으로 지목됐다. 아사히는 중의원 선거 압승 이후 총리가 인사를 좌우하면서 직접 발탁한 인물의 문제를 주변에서 지적하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자민당 참의원 지도부의 한 인사는 "총리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야나 농림수산상의 사임 이후에도 추궁을 이어갈 태세다.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는 "야나도 총리도 판단이 너무 늦다"며 예산 배분을 둘러싼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입헌민주당도 총리의 임명 책임을 계속 묻겠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15일 후임 인선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아사히는 총리의 뒤늦은 수습이 흩어져 있던 야당의 결집을 불렀다며, 참의원에서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소비세 감세 관련 법안 등 향후 국회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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