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전략기획실을 해체키로 하면서 그동안 전략기획실의 조정 아래 계열사들의 물량을 독식해 온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각 계열사들이 그룹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 경영을 펼치게 되면 계열사 몰아주기 관행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계열의 금융회사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삼성선물 등이 있다.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들은 퇴직연금 가입 등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마다 공개 입찰을 통해 금융회사를 선택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물량을 금융 계열사에 밀어주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생명의 경우 4월 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 잔액 1조4억4000만원 가운데 6851억원이 삼성 계열사에서 흘러나왔다. 전체 적립금의 68.5%에 달하는 금액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삼성물산 등 계열사들이 적극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서 적립금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겠다"며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해 그동안 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삼성 계열사들은 또다른 보험 계열사인 삼성화재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화재에 납입한 보험료 및 연금은 2000억원 이상이다.
특히 손해보험사 특성상 계열사들의 재산종합보험 수요를 독식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891억원의 보험료를 내 가장 많았고 삼성SDI(139억원)와 삼성토탈(113억원) 등도 거액의 보험료를 납입했다.
삼성증권은 삼성 계열사가 발행하는 회사채(CP) 대부분을 매입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카드가 발행하고 삼성증권이 매입한 회사채 규모만도 2140억원에 이른다. 삼성증권은 삼성 계열사들의 우량 회사채를 매매해 위험 부담 없이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삼성토탈과 성균관대학교가 삼성증권의 신탁상품에 1000억원 가량 가입하는 등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 판매 규모도 상당하다.
삼성투신운용의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3월 말 현재 삼성생명이 판매하고 있는 펀드 중 삼성투신운용이 운용하는 상품의 비중은 67.6%로 설정액만 1조원을 웃돌고 있다.
삼성증권도 전체 펀드 판매액 중 58%에 해당하는 10조원 가량이 삼성투신운용의 상품이다.
그러나 이같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지휘해 온 전략기획실이 해체되고 각 계열사들이 철저하게 시장원리에 따라 입찰을 진행하게 되면 금융 계열사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익률이나 운용 노하우 등 경쟁력에서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계열사 몰아주기 관행이 사라지면 다른 보험사들도 자신있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관계자는 "삼성화재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은 삼성화재를 믿기 때문이며 이는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라며 "계열사 간 유대관계가 약화돼도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 '아주뉴스'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