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냉전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세계의 경제모델이 되다시피 했고 게다가 정보통신 기술이 확산되어 세계 교역의 질서는 문자 그대로 일일 생활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화∙교역활성화∙시장개방∙장벽제거∙공정경쟁 등이 세계경제가 지향할 목표가 되었으며 그 중심에 미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략 8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세계화 또는 이른바 워싱턴합의(Washington Consensus)의 대세는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왔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발표에 의하면 시장개방의 추세는 세계경제발전에 확실한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최근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던 미국 발 금융대란 때문에 '세계화'란 말은 쑥 들어가 버린 것처럼 보인다. 워싱턴합의는 온데간데없고 '뉴욕의 저주'가 온 세계를 뒤덮고 있다.
월 스트리트에서 발생한 부실금융이 일급 투자은행들을 파산시키고 있는가 하면 세계은행산업을 주도했던 미국의 일급은행들이 줄줄이 흡수 합병되고 있거나 정부의 공적 자금에 매달리게 되었다.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화, 워싱턴합의는 적어도 금융 산업의 경우 완전히 허구로 들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금융 공학적 논리에 의존한 무조건적인 금융자유화∙파생금융의 확대는 사상누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딱히 금융위기는 아니더라도 미국식 세계화에 경고를 말한 이들이 있었다. 전 세계은행부총재요 노벨상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릿츠, 헤지 펀드의 대가 조지 소로스, '사다리 걷어차기'의 저자 장하준 교수 등이 그들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미국을 모델 삼는 시장자유화는 옳지도 않거니와 결국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물고 갈 것이라는 경고다. 그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쌤통'이라고 여기며 아마도 표정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종언을 고해야 마땅하다고 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더 강하게 내세울지도 모른다.
이번 미국 발 금융위기의 근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실물경제와 달라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는 금융업의 폭발성(explosiveness)을 경시한 미국 금융 감독 당국의 안이한 자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부실덩어리 위에서 수십 가지의 파생상품이 춤을 추고 있는데도 미 재무부나 연준이 이들의 건전성을 점검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금융업자들의 탐욕이다. 원래 금융이란 실물경제의 순조로운 순환을 돕기 위해 생겨난 서비스 업종이다. 이것이 최근 경제운용의 본부석을 차지하고 있는 형국에 이르렀다. 금융업종의 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나자 모든 인재들이 금융업에 몰려들었고 이들이 온갖 두뇌를 동원하여 해괴망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부지불식간에 사상누각을 쌓아 올린 것이다. 금융공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비정상적 추세에 일조를 한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금융위기는 세계화 추진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결코 절망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고 신뢰성 있으며 실물경제를 도와주는 부수적 분야로서의 금융 산업이 재탄생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세계화의 과업은정상궤도로 재진입 할 수 있다.
유장희(이화여대 명예교수. 학술원회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