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공화당 대통령후보 존 매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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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10-2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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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지난해 심각한 선거자금 부족과 인기없는 이라크전에 대한 일관된 지지에 대한 여론의 저항으로 위기에 몰렸으나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증파전략 이후 호전되고 있는 이라크 상황을 발판으로 반전에 성공하면서 희망의 끈을 다시 붙잡았다.

매케인 의원은 그동안 2000년 대선에서도 당시 경쟁자였던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을 제치고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하면서 대권에 대한 꿈을 키웠던 '희망의 땅' 뉴햄프셔에서 다시 한번 전기를 마련한다는 전략 아래 모든 정치적 자원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으나 이라크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무소속이 된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과 뉴햄프셔 노조,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인 보스턴 글로브 등의 지지선언이 잇따른 것도 매케인 의원에게 큰 힘이 됐다.

뉴햄프셔를 다시 '희망의 땅'으로 만든 매케인 의원은 테러용의자 고문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지구온난화 대책마련을 주장하는 등 당내 입장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밝히는 솔직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파나마 운하 지역에서 태어나 자주 이사를 다니는 전형적인 군인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매케인 의원은 195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조종사로 복무하다 베트남전이 한참이던 1967년 북부 베트남에서 자신의 전투기가 격추당해 2년 간 독방에 수감되는 비참한 포로생활을 경험했다.

매케인 위원은 총 5년 반에 걸친 포로생활로 얻은 부상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머리를 빚질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얻은 '전쟁 영웅'이란 칭호는 그의 정치생활 내내 든든한 자산이 됐다.

특히 매케인 의원이 포로생활을 할 당시 해군 사령관으로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풀어주겠다는 월맹군의 제안을 거절한 채 아들이 잡혀 있던 하노이 폭격을 명령했으며 매케인 의원도 전쟁포로는 생포된 순서에 의해 석방돼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들어 석방제안을 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매케인 의원은 1982년 애리조나주 신설 지역구에 출마, 하원의원으로 워싱턴 정가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86년 애리조나 정치권의 거목이었던 배리 골드워터의 뒤를 이어 상원의원이 됐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최고령 대통령이 되는 매케인 의원은 현재 피닉스에서 18세 연하의 부인 신디와 살고 있으며 7명의 자녀와 4명의 손자, 손녀를 두고 있다.

김나현 기자 gusskrla@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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