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동의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가 국내 금융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야권의 견해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10일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한미 FTA가 현실화하면) 무분별한 개방으로 금융위기를 불러들이고 이로 인해 금융위기가 심화,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 한미 FTA의 가장 독소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이나 정부 쪽에서는 FTA가 아니더라도 이미 금융개방이 상당히 진전돼 있는데다 FTA 협정상의 금융개방은 미미한 내용이어서 FTA가 금융위기를 키운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 파생상품 "협정상 차단벽은 설치"
금융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지만 개방폭은 어느 영역보다 넓다. 1990년대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가입과 환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정 등을 통해 금융시장이 폭넓게 개방됐고 뒤이어 외국 자본이 물밀듯 들어왔다.
은행의 외국인 지분제한이 없어 시중은행 대부분의 지분구조만 놓고 보면 '외국은행'이라고 해도 무방하고 아예 몇몇 은행은 위기 수습 과정에서 경영권 자체가 외국으로 넘어갔다.
바꿔 말하면 한미 FTA로 인한 추가 개방의 폭이 다른 산업에 비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의 초점은 한미 FTA 협상 당시 문제가 됐던 '신금융 서비스'다.
미국이 한미 FTA 당시 개방폭 확대를 원했던 신금융 서비스란 기존 금융상품의 영역을 뛰어넘는 상품들로, 지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파생상품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한미 FTA에 비판적인 진영에서 금융위기를 맞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영역들도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졸속비준 반대모임' 강연회에서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파생상품 때문에 발생했고 이 같은 파생상품의 국내판매를 허용한 한미FTA가 발효된 뒤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면 우리나라는 파멸적 상황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한미 FTA 협정 내용을 살펴보면 ▲금융.통화정책에서 FTA 배제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 유보 ▲급격한 외화 유출입 통제를 위한 일시 세이프가드 도입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파생금융상품에 대해서는 금융규제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 국경간 판매를 제한하고 반드시 상업적 주재를 하는 회사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런 규제장치를 들면서 "미국의 파생상품이 들어와 시장을 교란할 것이라는 것은 '기우'"라고 지적했다.
금융 파생상품의 폐해로 인한 금융위기로 미국에서도 파생상품의 규제는 오바마 당선인이 꾸릴 새 행정부의 주요 과제 상위 목록에 올라있다.
한미 FTA의 규정상 방어장치가 아니더라도 파생상품의 '백화점'인 미국 스스로가 금융기관에 대한 연방준비은행(FRB) 등 감독기관의 규제.감독권을 강화하고 있어 당장 한미 FTA가 금융위기의 직접적 파급경로가 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 자본시장통합법은 "신중해야"
그렇다고 한미 FTA 협정문에 마련된 조항들과 미국의 상황에 힘입어 금융시장 교란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금융서비스 이니셔티브' 부분을 보면 ▲금융서비스 분야의 예외목록 규제방식으로 전환 ▲방카슈랑스 규제의 2단계 진행 등에 대해 미국이 '환영한다'고 돼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자본시장 통합법 및 관련 조치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는 다시 금융규제 강화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향후 미국의 기조와 다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지난 5일 "차입(레버리지)을 기초로 하는 미국식 투자은행(IB) 모델은 퇴조하고 있다"며 "자본시장통합법이 추구하는 것이 한국판 `골드만삭스'였다면 우리도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자통법 재검토론'도 부상하고 있다.
또 하나의 주요한 쟁점은 과연 미국이 개방을 요구한 신금융 서비스의 목록도 파악하기 힘든 상태에서 한국의 규제장치가 완벽하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 부분은 추후 FTA 발효시 금융시장 개방과 규제의 폭을 두고 한미 양국간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항목이기도 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미 FTA 이후 대미 통상정책의 방향과 과제' 보고서에서 "FTA 이행과정에서 상대국에 불이익을 줌으로써 통상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쟁점사항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신금융서비스 허용 조건에 대한 판단 기준'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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