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일 문을 열었던 정기국회가 9일로 100일간의 회기를 마쳤다.
그러나 초유의 경제난 속에 치러진 이번 국회는 정쟁 속에 `식물국회', `불임국회'의 오명을 안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위헌'을 반복했고 국정감사와 쌀 직불금 국정조사 내내 신구(新舊) 정권의 책임공방으로 일관하는 등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사이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제난 타개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초당적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여야 모두 정치공방에 발목잡혀 허송세월만 한 셈.
무엇보다 내년도 예산안 늑장처리는 부실국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야가 예산안 법정시한 3일 뒤인 지난 5일 예산 부수법안이라 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와 소득세 등 각종 감세법안을 뒤늦게 처리하고 12일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민주노동당의 항의 방문 등 우여곡절 끝에 합의 세리머니는 아예 생략했다.
이날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도 민노당이 감세법안 처리에 반발, 법제사법위원장실을 점거하면서 끝내 감세법안의 정기국회내 처리는 무산됐다. 또한 여야가 기싸움으로 상당시간을 허비하면서 283조여원에 달하는 예산안의 졸속.부실 심사 가능성이 점쳐지는 형편이다.
법안 처리 성적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기국회 기간 제출된 법안 건수는 총 2천69건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본회의에서 통과된 건수는 125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여야 의원 공동발의로 처리된 양벌규정 관련 법안 69건을 포함, 96건은 정기국회가 문닫기 하루 전인 8일 `벼락치기'로 처리됐다.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사이버 모욕죄 등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손도 못댄 상태. 그나마 운영위, 정보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 일부 상임위에서는 처리 법안 건수가 전무하다.
하반기 정국을 강타한 쌀소득 직불금 부당수령 실태의 진상을 파헤치겠다며 시작된 쌀직불금 국조도 여야간 힘겨루기로, 아직 증인채택도 못 이뤄지는 등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이 같은 상황때문에 여야는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렸지만 하나같이 무기력증만을 보인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한나라당은 172석이란 거대 의석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내에서조차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 역시 당내 노선투쟁과 민노당, 시민단체 등 외부 공조 대상들의 반발 등 강온기류의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채 견제, 대안야당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자유선진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임했지만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한 창조한국당과 엇박자를 보였다.
특히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과 선진당 사이에서 불거진 `한나라당 2중대' 공방은 소모적 정치공방에 몰두하는 한국 정치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논평에서 "부단한 노력 끝에 12일 예산안을 처리키로 했다"며 "국민을 실망시켜선 안되며 임시국회에서 2인3각, 3인4각에 임하는 자세로 금융위기 극복에 힘을 합하자"고 밝혔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미증유의 경제위기에도 불구, 국민의 기대치와 전혀 동떨어졌다"며 "정부.여당이 엉터리 예산을 가져와 졸속심의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회기내에 해야 할 일을 10%도 못해 참담한 마음"이라며 "예산안도 회기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등 부끄러운 우리 정치현실의 자화상"이라고 자성했다.
여야는 10일부터 곧바로 30일간 임시국회를 열어 예산안과 경제.민생법안 등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나 쟁점법안을 둘러싼 입장차가 워낙 커 한판 격돌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경제살리기 국회', `생산적인 민생 국회'의 구호가 또 다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비롯해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경제살리기' 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정기국회 중 보여준 무기력증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강경태세를 벼르고 있어 첨예한 대치가 예상된다.
한나라당이 국정원법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사이버모욕죄 법안, `떼법 방지법' 등에 대해선 여야 협의로 처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들 쟁점법안도 상정되는 순간 충돌이 불보듯 뻔한 뇌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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