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34)는 지난 11월 직장 근처의 현대카드 일선 영업소 팀장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최씨는 현대카드를 해지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재가입 하는 것이 석연치 않았지만 연회비 5년간 면제와 2만 원짜리 주유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최씨가 카드가입을 통해 받은 경품은 5년 연회비 15만원과 주유상품권 2만원 등 총 17만 원 어치다. 하지만 현행법은 카드 신규 가입시 연회비의 10%를 넘는 기념품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최씨에게 3000원 초과의 경품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를 어겼고 최씨는 카드사의 불법 영업에 걸려든 것이다.
더구나 현대카드는 최씨가 카드 해지 뒤 재가입 한 거라 신규회원 기준이 되지 않는다며 주유상품권 증정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최씨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직장인 김 모씨도(30) 이달 초 삼성카드 신용카드 모집인에게 카드 가입 권유를 받았다. 김씨도 최씨와 마찬가지로 3년간 연회비 면제와 주유권 등 10만 원 상당의 경품에 매력을 느꼈지만 카드 가입을 거절했다.
올해 2월, 2년간 연회비 무료혜택과 여행용 가방(시가 4만 원), 미화 2달러 지폐, 영화티켓 2장을 경품으로 받고 외환카드에 가입했다가 모집인의 밤낮을 모르는 재촉전화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카드 모집인은 3개월간 10만 원 이상 사용을 요구했다. 또 경품에 끌려 무분별하게 가입한 신용카드가 지갑 속에 넘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카드 대란 이후 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을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드 모집인들의 불법 영업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로 금융당국의 감시가 잠시 소홀해지고 카드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자 카드 모집인들의 고가 경품 영업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19일 금융감독원과 카드업계에 따르면 고객 모집시 기준 연회비(평균 1만원)의 10%를 넘는 기념품 증정은 불법임에도 카드 모집인의 기념품 증정을 통한 불법 영업은 증가하고 있다.
시장은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카드 모집인의 수가 크게 늘어 불법 영업행위가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체 카드 모집인 수는 3만9227명(9월 말 기준)으로 지난 6월(3만823명)에 비해 3개월 만에 3.3% 증가했다. 신용카드 발급매수도 지난 2005년 8290만5000장이던 것이 올 들어서는 9751만9000장(9월 말 기준)으로 3년 사이 17.6% 급증했다.
신용카드회사들은 카드 모집인들의 불법 영업에 대해 관리·감독 의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카드사가 신용카드 모집인에 교육과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영업 일선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카드사가 일일이 신용카드 모집인을 쫓아다니면서 불법행위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 모집인은 카드사로부터 판매 위탁을 받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카드 모집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적발됐다고 해도 카드사에는 별 피해가 없기 때문에 관리·감독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카드사의 관리·감독 및 교육 의무를 강화하고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벌칙이 부과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카드 모집인의 자격 요건도 좀 더 까다롭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신용카드 모집인은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와 불법행위로 인한 카드 모집인 자격이 박탈된지 2년이 지나지 않은 자를 대상으로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김영기 금감원 여신관리 팀장은 "TF(태스크포스) 운영, 법규 보완, 자체 규약, 등록시스템 개선 등 모집인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라면서 "법 개정은 국회를 거쳐야 해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밖의 것들은 12월 중에 마무리 지어 내년 초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 팀장은 "하지만 모집인들 대부분인 노점상과 같은 생계형이라 100% 근절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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