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반국민과 정부,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서로 고통을 분담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경제상황은 서민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다 무거운 고통분담의 짐’을 지우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새해 들어 일반 서민가계는 기업의 대량 감원과 물가상승의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전 세계 실물경제가 얼어붙으면서 국내에서도 기업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더구나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본격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대량 감원사태도 예상된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은 실업 공포감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는 녹색뉴딜 정책으로 ‘일자리 사수’에 나섰지만 건설·노무직과 청년층 임시직 위주여서 사무·관리직·기술직의 경우 재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업은 경영난으로 인해 신규 채용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채용하더라도 극히 제한할 계획이어서 올해 1분기(1~3월)이후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올 대규모의 신규 인력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잠재실업군으로 전락할 사태가 예견되고 있다. ‘실업대란’이라고 불러도 좋을 사태전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들과는 달리 실업구제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실업은 곧 생존권 박탈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실업의 장기화와 실업자 양산은 정치·사회적 불안을 조장해 국가의 안정을 파괴한다.
기업의 감량경영도 좋지만 근로자들의 생계유지가 일방적으로 위협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경제 위기 극복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더라도 실직자와 그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국가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실업구제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실직과 임금동결 내지 감봉의 고통을 받고 있는 근로자 등 서민가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요지부동인 물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들의 지난해 11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2.3%로,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7월 4.9%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같은 기간 5.9%에서 4.5%로 소폭 하락에 그쳤다. 지난해 7월까지 원자재값이 폭등하면서 국내 물가가 크게 올랐지만 정작 원자재값 폭락 이후의 영향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어 물가라도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를 땐 빨리 오르고 내릴 땐 미적거리는 물가 흐름과 급격한 경기 침체 상황이 대조가 되면서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연초부터 세제, 설탕, 식용유, 소주 같은 생활용품 가격은 오히려 줄줄이 오르고 있다. 특히 정부의 세제혜택이 사라지면서 연초부터 기름 값도 다시 뛰고 있다. 석유류값 인상은 물가 전반에 광범위한 파장을 미치기 마련이다. 전기·수도요금과 버스·택시 등 대중교통요금, 목욕, 이·미용, 음식 등 서비스가격과 전반적인 공산품 가격의 인상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가상승은 서민가계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실업과 물가상승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서민대중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도록 고용 및 물가 안정을 통한 서민생계 안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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