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에 '전봇대 싸움'이 재현되고 있다.
KT-KTF 합병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KT의 필수설비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해 KT와 경쟁업체들 사이에 거침없는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
특히, SK진영(SK텔레콤·SK브로드밴드)은 KT-KTF 합병 반대 논리로 KT의 필수설비 독점 및 공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어 KT와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봇대 싸움'은 KT가 공기업 시절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주도적으로 구축한 관로, 전주 등을 후발사업자들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해 발생한 '무단사용-임대거부' 갈등이다.
지난 2006년에는 KT가 케이블TV업체들이 자사의 전봇대(전주)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며, 케이블TV업체들은 KT가 케이블 채널을 불법 송출했다며 형사 고소로 맞서 갈등이 고조됐었다.
통신업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KT의 관로나 전주를 무단으로 사용해오다 적발돼 기본 사용료의 2~3배를 더 지불하기도 했다.
이처럼 통신업체나 케이블TV업체들이 KT의 필수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KT가 필수설비 공유에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에만 KT에 481건의 전주 임대요청을 했으나 이중 416건(86%)가 '임대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KT-KTF 합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어쩌면 필수설비를 공유하는 문제"라며 "KT가 필수설비를 독점하고 있는 것 자체가 통신시장에 공정경쟁을 막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SK진영이 KT-KTF 합병과 관련 '필수설비 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이유는 KT 시장지배력 확대를 우려해 지배력의 원천을 흔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K텔레콤은 그동안 독점해온 '황금주파수(800㎒)'를 재분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무선시장에서 지배력이 크게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KT는 KTF가 황금주파수 일부를 배분받을 경우 필수설비와 함께 유무선 지배력을 모두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KTF와 합병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필수설비에 황금주파수까지 보유하게 되면 통신업계에서는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산이 되는 셈"이라며 "정부가 소비자 편익과 업계의 공정경쟁을 원한다면 합병 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과거 '전봇대 싸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통신업체들이 '필수설비'나 '황금주파수' 같은 시장지배력의 원천이 되는 요소들을 확보하고 제거하기 위한 생존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민 기자 mostev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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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필수설비 공유 거부 사례>
#1. 국회에 관로 제공 거부
-내용: 국회의사당 신규 인입 필요에 따라 광코어 임차 요청
-결과: 제공 가능한 관로 없음. 단순 용량 부족으로 거부했지만 그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음.
#2. KTF 용인국사 설비 거부
-내용: KTF 국사인입을 위해 광케이블 임차 요청.
-결과: 광케이블이 2004년 3월에 준공됐다는 이유로 거부. 설비제공고시에 2004년 이후에 구축된 광케이블은 의무제공대상설비에서 제외됐기 때문.
#3. 대구 강창교 구간 관로 임차 거부
-내용:대구 달성군 죽고지역 망구성용 임차 요청
-결과: 요청구간내 여유시설 부족. 추가 내관 포설을 요청했으나 거부. 당시 상대 맨홀은 내관 4개로 구성할 수 있고 KT가 3개 사용 중 1개가 남아 있는 상태인데도 거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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