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해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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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2-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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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단단히 굳었던 동토를 뚫고 새 순이 돋아나고 있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강퍅한 마음 같은 언 땅을 부드러움으로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잡게 된다.

‘해토머리’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는 시기, 즉 봄의 초입을 일컫는다. 이 시기에는 온 만물이 몸에 물을 머금어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온 나라가 일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유가 어찌됐든 세상은 아직 봄을 맞지 못하고 있다. 2008년의 겨울이 마각을 거두지 않은 채 계속해서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2차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봄 보다 빨리 무성하게 가지를 치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0만 명 이상 줄었고, 급기야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2003년 9월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 인력이 줄었으니 일자리도 줄고 회사도 줄었다. 실직자 숫자도 100만 명에 근접했다.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실업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봄 치고는 고약한 세월을 지내고 있다.

자영업자 숫자도 지난달 기준 559만 명으로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계절적 요인도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도산·폐업 숫자가 최근 2개월 사이 42만 명에 달한다. 창업한 인원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부도업체도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부도업체 수(당좌거래 정지업체)는 전달보다 무려 48곳이나 증가한 345곳에 달했다. 2005년 3월(359개)이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더더욱 침울한 것은 올해 경제성장 전망이 마이너스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5일 올해 상반기 국내 경제성장률을 -4~-5%로 역성장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초 0.7%로 잡았지만, 시계제로인 상황에서 ‘장밋빛 공약’은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본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충격이 덜하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말 3%대 성장을 예견했던 몇몇 연구기관이 요즘 전망치를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에 반해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내 경제성장률을 -4%로 전망했다. 현실을 외곡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각설하고, 땅이 풀리는 해토머리인데, 갈수록 사람살이는 팍팍해지고 꽁꽁 얼어만 간다. 새 싹이 움틀 틈조차 보이지 않는 시절을 보내다 보니 일 년 전 해토머리에 새 시대를 열겠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건설사 사장 출신의 대한민국 CEO가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저 높은 곳에서 계신 분의 눈에는 언 땅 저 멀리 젖과 꿀이 흐르는 시절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난 한 해를 살았던 민초들이 단단히 속은 것일까?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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