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잠잠하던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가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그 대상으로 건설사들을 타킷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건설업체들이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울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돈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회사채 발행 등 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또 지어놓은 아파트가 분양이 안되면서 들어와야 할 돈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최근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회사채 발행이 일부 재개되면서 건설업계의 '돈맥경화'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희망사항이다.
금리가 아직도 과도하게 높고 발행조건도 까다로워 중견 건설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회사채 발행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의한 자금 대출이 대형 건설사나 대그룹 계열 건설사 정도로 한정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대림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A+(한국신용정보, 한국기업평가)이지만 표면이율은 8.3%에 달한다. 대림산업의 이번 회사채 발행은 지난해 5월 1500억원의 회사채 발행(3년물 6.27%, 5년물 6.44%)이후 10개월만이다. 10개월 만에 이율이 2%포인트 이상 오른 것이다.
산업은행을 통해 2년 만기 무보증회사채 1000억원을 발행한 롯데건설이나 삼성증권을 통해 1년 만기 회사채 500억원을 발행한 SK건설 역시 표면이율이 각각 7.95%와 8.80%였다.
이들 건설사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대형 건설사이거나 대그룹 계열사이기에 그나마 회사채 발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용등급 BBB이하의 건설사들은 아예 발행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풍림산업 고려개발 등 6개 건설사가 2877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회사채 발행시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불거진 8월에는 두산건설, 특수건설 등 4개 기업(2840억원), 9월 한일건설 등 3개 기업(1433억원)으로 줄었고 급기야 10월이후에는 건설업체의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일부 재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분양 아파트도 여전히 문제다. 2월말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16만가구라는 것이 정부 통계지만 업계는 이보다 훨씬 많은 25만가구를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구당 분양가격을 2억원으로 가정했을 때 50조원이라는 돈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B건설사 자금담당 임원은 "기업은 제품을 판 돈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건설사의 경우 제품인 아파트가 안팔리는데 버틸 제간이 있겠느냐"며 "기본적으로 미분양 해소가 되지 않는 한 자금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L부장은 또 "건설업계 구조조정으로 상당수 건설사들이 퇴출의 길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알면서도 당할 수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자금담당 부장은 "저금리의 고액 대출을 미끼로 접근한 뒤에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챙기고서는 바로 잠적해버린다"면서 "정상적인 거래라면 어느 누가 기업을 상대로 회사채 이율과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느냐"고 반문했다.
C건설사 자금담당 K부장은 "정부자금 운운하면서 저리의 고액대출 유혹은 100% 수수료만 챙기고 잠적해버리는 전형적인 '먹튀(먹고튀기)' 전략"이라며 "어음이나 부동산 등을 담보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돈을 빌리려는 측에 믿음을 주기 위한 하나의 전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K부장은 정권이 바뀌거나 경기 상황이 어려워지면 구정권 비밀자금이니 해외자금이니 그럴듯한 얘기로 기업관계자들을 믿게 한 뒤에 수수료만 챙기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건설경기가 어려운 점을 악용해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영배 기자 young@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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