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냐, 미래를 위한 투자냐. 금융위기 충격으로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의 고민이다.
초대형 글로벌 기업과 은행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것을 보면 살아남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개발(R&D) 투자를 멈추지 않는 제너럴일렉트릭(GE)과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초일류 기업들의 행보에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GE와 MS는 임금을 삭감하고 인력을 줄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R&D 예산은 동결하거나 오히려 늘렸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한 R&D 투자를 통해 혁신을 이뤄야 불황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기가 되살아났을 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R&D 투자 규모와 기업의 성공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소개했다. 윌리엄 더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부교수는 "마케팅 및 기업 운영 예산이 R&D 예산보다 기업의 성공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R&D 예산이 신성불가침한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R&D 중에서도 'R(연구)'보다는 'D(개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는 '가치'가 발생하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활동의 핵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은 황금알을 낳는 게 거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오해"라고 덧붙였다.
더건은 또 기업들이 R&D 성과를 결코 공개하거나 팔 수 없는 비법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R&D에 성공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실제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업이 이를 통해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 이상 '비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GE는 지난 2001년 잭 웰치가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찾는데 집중했다고 더건은 설명했다. 이른바 '합법적인 표절'로 불리는 이 방식은 다른 기업이 돈을 들여 개발해낸 기술을 남들보다 먼저 사들여 응용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엑손모빌 역시 다른 기업들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때도 흔들림 없이 석유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풍력개발이 대세로 떠오르면 엑손은 관련 기술을 사들일 것"이라며 "이들은 연구기관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더건은 또 다른 사례로 과학기술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러시아는 투자 성과를 사업상의 성공으로 연결하지 못했지만 기술 부문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싱가포르는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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