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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 외국인 어떤 처우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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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6-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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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된 미국 국적 여기자 두 명이 현지에서 받고 있을 처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몇 년간 특히 외국인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우가 개선됐다고는 하나 워낙 폐쇄적인 독재국가의 이미지가 강한데다가 그간 가혹한 대접을 받은 외국인들의 선례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5일 AP통신에 따르면 잘 알려진 최근 사례는 지난 1996년 3개월에 걸쳐 스파이 혐의로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된 에번 헌지커의 경우다.

당시 26세였던 헌지커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로, 수영으로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다가 미국의 빌 리처드슨 현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을 통한 중재로 풀려날 수 있었다.

헌지커의 가족은 그가 적절한 대우를 받았다고 밝혔으나 당국이 제공한 음식은 매우 열악했다고 말했다.

애초 북측이 석방의 대가로 1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5천달러의 호텔 비용을 치르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석방 후 한 달만에 자살했으나 그는 애초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부터 3년 후에는 일본인 전직 기자 스기시마 다카시가 평양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를 위한 간첩활동 혐의로 억류됐다.

그는 2년간 산악 지대 시설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누렸으며 세끼 더운 밥을 제공받았다고 석방 후 증언했다.

그러나 살아나갈 수 없으리란 공포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다.

베네수엘라 공산당원인 알리 라메다는 스페인어 통역 업무를 위해 1966년 북한에 입국했다가 1967년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재판 없이 1년간을 축축하고 더러운 곳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빵조각과 건더기를 찾아보기 힘든 수프가 식사였으며 정오부터 자정까지 신문을 받고 구타도 당했다.

라메다는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에 증언을 통해 "죄수들의 울부짖음을 수없이 들었다. 나중에는 그 울음이 공포나 고통에 따른 것인지, 광기 때문인지 구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라메다는 20년형을 선고받아 사리원시 인근 감옥에서 6년을 지내다가 1974년에야 석방됐다. 감옥은 난방이 거의 되지 않아 발이 얼어붙는 지경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나마 라메다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와 함께 복역하다가 풀려난 프랑스인 자크 세디오는 건강이 악화돼 살아서 북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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