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 기업들이 발빠르게 구조조정을 감행하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자동차 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는 최근 몇달간 경영진을 교체하고 특별 프로젝트를 중단했으며 일시적인 감산을 단행하는 등 일본 자동차 산업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 도시바도 계열사들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비생산적인 사업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소니 역시 올해만해도 5000억 엔(약 52억 달러) 규모의 원가 절감을 위해 공장 수를 반감하는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일자 최신호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이같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등 경제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선례가 전 세계기업들이 뒤따를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으로 위기에 직면했던 일본은 성급히 긴축 재정으로 돌아선 결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부실 은행을 비롯해 투기적인 부동산 개발업체, 지나치게 야심찬 기업을 청산하는 등 국내적인 문제 해결에만 급급했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출을 증대시켰다. 수출을 통해 수익을 올렸던 2002년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있어 실패를 경험했다. 기업들은 제멋대로 뻗어있는 사업을 줄이고 비핵심 사업을 분리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생산 능력을 지나치게 확대해 나갔다. 이는 엔저 현상이 지속돼 수출 호황을 오랜 기간 누릴 것이라고 오판한 것에 기인한다.
일본 기업들 대부분은 가장 쉬운 구조조정 방식으로 인력 감축을 택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의 전통적인 종신고용 원칙이 폐기됨에 따라 노동력은 더욱 유동적으로 변해갔다. 이에 전체 인력의 5분의 1을 차지했던 비정규직 노동력이 3분의 1로 증가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력을 감원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인력 감축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기업들은 해고자들에게 퇴직 수당은 물론 퇴직 연금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도시바와 같은 기업들이 구조조정 비용으로 거액의 투자를 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기업들의 또 다른 구조조정 형태로 인수·합병(M&A)을 꼽았다. 이들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과 자금 부족에도 불구하고 M&A를 추진한 결과 지난해 해외 사업 인수에 있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주류회사 기린과 전산업체 J파워시스템스 등은 올해 외국 기업들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계열사를 직접 조정하거나 분리시키는 등 대부분이 국내로 한정돼 있다. 이같은 구조조정으로 일본 기업들이 과연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들 구조조정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원가 절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하지만 원가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감행했던 수출지향적인 일본 거대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섣불리 무리해서 단기간내 효과를 보려 했다가 오히려 큰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국내적인 구조조정을 계속 단행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없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은선 기자 stop1020@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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