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의회 민주주의 신념 이어받아···분열·갈등 넘어 통합의 길 추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록 타계했으나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을 위해 평생을 고뇌해 온 그의 발자취는 파행으로 얼룩진 현 정치권에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김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은 국회에서 민주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철저한 국회 우선주의자였다. 그 역시 장외투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원내외병행투쟁’이었다.
그는 야당지도자로서 60년대부터 군부독재에 대항하면서 어떠한 압력에도 끝까지 모든 것을 국회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지금도 정치권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예가 64년 6대국회의원 시절 감행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링)다.
고인이 당시 박정희 정권의 부당한 비자금 수수를 폭로한 동료의원의 구속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했던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60년대 말 3선 개헌 당시 모든 야당인사들이 장외투쟁을 펼치자고 했을 때도 오직 그만이 ‘국회에서 개헌을 저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은 지난해 6월 민주당 지도부가 방문한 자리에서 “내 반대에도 당은 장외투쟁을 했고 결국 아무런 성과도 못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울러 “국회의원은 원내에서 싸우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라며 “수십년 나의 경험과 의회주의 원칙을 보더라도 국회는 오래 비우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18대 국회는 이러한 뜻과 반대로 파행과 장외투쟁의 연속이었다.
미디어법, 금산분리완화법, 한미FTA비준안 등 ‘MB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입법전쟁은 3차례에 걸쳐 6개월 이상 지속됐다. 이 가운데 전기톱과 해머가 동원되는 등 ‘폭력국회’라는 오명을 쓰면서 국제적 망신도 톡톡히 당했다.
경제위기 확산에도 여야는 다툼으로 일관하면서 비정규직법 등 민생법안에는 거미줄이 쳐졌다. 지난달 말에는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되면서 여야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인의 영결식을 국회에서 치르는 것은 철저한 의회민주주의자였던 그의 신념을 이어받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실제로 미디어법 처리 후 관계가 냉각됐던 여야에선 ‘3김 시대’를 종식하고 화해와 통합으로 가자는 새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23일 “고인께서 평생 추구했던 의회민주주의 발전은 정치권의 남은 숙제”라며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합의 길, 남북 화해를 위해 하나 되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도 이날 “고인이 남긴 뜻대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겠다”며 “더 이상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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