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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
하토야마의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고, 1954~1956년 총리를 지낸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5년 자민당 창당의 주역으로 꼽힌다.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도 참의원과 외상을 지냈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 역시 내각 요직을 거쳤다.
재력도 상당하다. 세계 최대 타이어회사 브리지스톤 창업자인 외조부 이시바시 쇼지로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하토야마의 든든한 정치 자금줄이다.
하토야마는 그러나 조부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가문의 기대를 뒤로 하고 도쿄대 공대 졸업 직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 강단에 섰다. 이후 1986년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홋카이도에서 출마,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 때 나이가 39살이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가문' 직계 장손이라는 후광 덕분에 2005년 총선까지 7선을 기록하는 등 중앙 정치 무대에서 비교적 빨리 두각을 나타냈다.
하토야마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며 고생길에 나선다. 그는 신당 사키가케에 합류한 뒤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간사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민주당 대표로 당을 주도했다. 하토야마와 함께 자민당을 박차고 나왔던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는 정치 노선이 엇갈려 자민당에 복당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야 대표 정치인으로서 형제간에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토야마는 미국이 이끄는 시장근본주의를 비난하며 일본과 일본 국민을 세계화로부터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대등한 미ㆍ일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대신 하토야마가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동아시아지역 중심의 경제ㆍ외교 정책을 강조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통합 수위를 유럽연합(EU) 수준으로 높이자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하토야마가 이런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하토야마는 일본 정치계에서 친한파로 분류된다. 그는 한일의원연맹의 일본 측 고문과 민주당 내 일한교류위원장을 지내며 일본 내 한국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는 "한ㆍ일간 갈등을 고려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도 공언했다.
하토야마는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과거 반성을 통한 과거사 청산 의지를 피력했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는 과거 식민지 침략을 미화하는 풍조가 있다"며 "민주당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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