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美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09-10-09 21:12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올해 노벨평화상은 버락 오바마(48) 미국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국제 외교와 인류 협력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은 결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것은 올해 1월20일이고 노벨평화상의 후보 접수 최종시한은 2월1일이다.

즉 10여일간의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기보다 이전의 활동 또는 대통령 후보로서 제시한 국제 평화에 대한 비전이 수상 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노벨위원회는 비핵화에 대한 오바마의 비전과 성과를 특히 높게 평가했다고 9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주재하고 '핵 없는 세상' 구현을 위한 핵무기 확산 근절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15개 회원국은 핵무기 및 핵물질의 확산 방지와 핵실험 금지를 위한 유엔 회원국의 노력과 핵확산 금지조약(NPT)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 1887호를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북한과 이란의 비핵화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7월에는 러시아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나 양국의 핵탄두 수와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등의 발사 수단을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노벨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외교 방식에서 탈피해 다극화된 국제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유엔과 여타 국제기구들이 활동할 여지를 넓혀줬다는 의미다.

노벨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으로 대화와 협상이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이 더욱 선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아랍권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에서 조지 부시 전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앙금이 쌓일 대로 쌓인 이슬람 국가들을 향해 미국인은 이슬람의 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6월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의 '역사적인 대(對) 이슬람 화해연설'을 통해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을 하고 있지도 않고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가 맞서야 할 우선적인 사안은 모든 형태의 폭력적인 극단주의"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며 외교관계를 단절했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화해의 악수를 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쿠바를 껴안으며 중남미 일부 국가들에도 화해의 손길을 뻗었으며 가나를 방문해 독재와 부패, 분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정치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미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결(自決) 원칙과 굿 거버넌스(善政)를 강조했다.

중국과 워싱턴에서 전략.경제 대화를 갖는 등 대중 관계도 호전시켰다.

한편 이번 수상으로 미국은 역대 19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 미국 대통령 중에선 테오도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등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손가락질을 받고 마약에까지 손을 댔던 열등감에 가득 찼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하버드 법대를 졸업, 지역 활동가와 인권변호사, 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정치입문 12년만에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갈구하던 화두 `변화'를 내세워 흑색 돌풍을 일으킨 그를 미국인들은 '검은 케네디'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당시 하와이 대학으로 유학 온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인류학도였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양부, 백인 어머니,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인도네시아의 생활과 미국이면서도 미국이 아닌 하와이에서의 어린 시절, 다양한 인종과 종교로 얽혀 있던 이부.이복 형제들.

이 속에서 극심한 정체성 갈등을 겪으면서 마약까지 접하게 됐지만 이 같은 내적 갈등과 방황이 오히려 훗날 그에게 문화적 이해와 관용의 토양을 만들어준 양분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틀 대학에 들어가 반(反) 아파르헤이트(인종차별정책) 집회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버드 법대 대학원을 진학, 법학박사를 받고 인권 변호사가 됐으며 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인 발을 디뎠다.

2007년 2월10일 대권도전의 출사표를 던진 그는 최대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으며 지난해 11월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