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리스 아이즈먼 팬톤컬러연구소 소장 |
팬톤이 선정한 대표색이 처음부터 시장의 호응을 얻었던 건 아니다. 특히 노란색 계열에 대해 시장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펜톤이 2002년 말 '몰튼오렌지(molten orange)'를 이듬해의 대표색으로 내놨을 때다. 당시 미국에서 오렌지색은 빅랏츠(Big Lots)와 같은 할인 유통점에서나 접하는 비주류 색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3년 들어 몰튼오렌지는 비디오카메라에서 포드의 신차에 이르기까지 주류시장 제품들을 노랗게 물들였다. 리트리스 아이즈먼 팬톤컬러연구소 소장은 "이 때부터 제조업체들이 색상으로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펜톤은 어떻게 비주류 색이었던 노랑에서 대유행 가능성을 엿봤을까.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최근 그 비결이 쉼없는 '발품'에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 해의 대표색은 소비자 취향 및 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만큼 소비재 기업의 제품 디자이너는 물론 마케팅 담당자들도 펜톤의 대표색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춘이 미리 전한 2010년 대표색 키워드는 '탈출'이다.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대표색 미모사옐로 |
세계를 무대로 한 펜톤의 '색 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즈먼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미국 시애틀과 뉴욕, 뉴저지의 지역 본부를 지키고 있는 사이 나머지 팀원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찾아낸 색상을 본부에 보고하는 방식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자료들은 보고서로 정리돼 매년 다섯 차례 발간된다. 보고서 한 건당 가격이 750 달러에 달하지만 펜톤이 내는 보고서는 제품 디자이너들의 필독서로 명성이 높다. 아이즈먼은 "유행색을 미리 점찍는 일은 여러 갈래의 트렌드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라며 "정확한 예측은 될성 부른 빛깔을 찾기 위해 발품을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톱 디자이너들의 의견도 펜톤의 대표색 선정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펜톤은 매년 두 차례 톱 디자이너 50명으로부터 취합한 유망 색상들 가운데 이듬해 유행할 색상 10개를 꼽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선정된 2010년 봄·여름 시즌 유망 색상은 노랑에 녹색빛이 감도는 '오로라'와 빨강에 청록색이 가미된 '토마토퓌레' 등이다.
펜톤의 대표색 선정에는 소비자 심리도 반영된다. 아이즈먼은 소비자의 취향 변화가 색상의 이미지를 뒤바꿔 놓은 대표적인 사례로 갈색(브라운)을 꼽았다. 나무나 진흙의 이미지가 강했던 갈색은 우중충한 색으로 인색돼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커피체인 스타벅스가 갈색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 초콜릿 음료 쇼콜라(chocolat)가 인기를 모으면서 갈색이 고급스런 빛깔로 거듭난 것이다.
아이즈먼은 경제 여건 변화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경기가 거침없이 상승하거나 끝 모르게 추락하는 경우 사람들은 중립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표보다는 색상이 눈에 띄는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내년의 대표색은 뭘까. 아이즈먼이 전한 몇가지 실마리 가운데 하나는 '탈출'. 그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탈출하길 원하고 있다"며 "일상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탈출'의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색상이 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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