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까지 봄날씨처럼 따뜻하던 게 일요일 하루종일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월요일(9일)부터 기온이 4도 이상 떨어져 늦가을의 스산함이 뒤늦게 찾아 왔다.
이게 바로 ‘입시 한파’일까.
12일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은 67만 7000여명이지만, 당사자외 성적의 높낮이에 애를 태우는 그 가족이나 친지, 기타 관계자를 합치면 거의 1000만명에 달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초조해하거나 긴장을 하는 기운들이 하늘로 뻗치니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갑작스레 추위가 찾아오는 게 아닐는지.
필자가 입시 지옥에서 해방된 지 벌써 36년(1973년 대학 입시)이 넘었으니 시험의 악몽에서 이제 벗어나고도 한참 되지만, 시험 시즌만 오면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릴 때 워낙 시험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필자가 부산 시내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인 1964년 무렵만 해도 중학교 입시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했다.
소위 일류 중학교 합격권에 든 학생들은 쉬는 시간도 없다 시피하며 오후 늦게까지 교실에서 공부와 모의시험에 시달려야 했고, 수업을 마치면 주로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형 집에서 밤 11시가 넘게 까지 과외를 받았다.
철없이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매일 수용소 생활을 하다 시피하니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밤 11시가 넘어 과외가 파하면, 당시 유일한 휴식처인 만화방으로 달려가 그림을 보는 둥 마는 둥 만화책을 넘기다가 귀가하면 통금 사이렌(자정)이 귓전을 때리곤 했다.
목표한 대로 일류 중학교엘 간다 하더라도 또 다시 일류 고등학교 합격이라는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중 2부터는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청소년기를 교과서, 참고서와 씨름하다 시피했으니,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아픔이 가시지 않아 요즘도 아침 출근 때 얼굴이 푸석 푸석한 고3생과 마주치면 가슴이 저려온다.
오늘 수능 시험이 끝나면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성적이 좋으면 더 좋은 대학과 더 좋은 학과로 가기 위해, 성적이 나쁘면 어떡하든 대학 뱃지를 달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치를 것이다.
여기에서 대학의 브랜드에 집착하지 말라거나, 적성에 맞춰서 라도 등급이 낮은 대학을 고르라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조언일 것이다.
그러나 고교 졸업후 죽을 때까지 50~70년 중 대학 4년간은 어쩌면 찰나에 불과할 지 모른다.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고3 가을, 담임 선생님은 치과 대학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했던 필자는 선생님에게 당돌하게 “저는 문과 체질인데, 어떻게 학생의 진로를 함부로 바꾸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하고 문과대학을 지망했었다.
70세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치과의사를 저버린 게 결코 후회는 안되지만, 당시 부모님들로부터 인생의 진로에 대한 상담을 받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
하기야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힘들어셨던 부모님들이 20,30년후에 어떤 직업이 좋을 지 알수가 없었으리라.
일제의 암울한 시기에도 인촌 김성수 선생(고려대학교, 동아일보 창설자)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찾아라. 성공 가능성은 그 곳에 많다”고 하셨으니 학부형들께서 귀담아 들을만한 말이다.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고 굳이 낙망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1930년대 말 이후 세계 가전업계를 한동안 주름잡았던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생전에 자신에겐 3복이 있어 글로벌한 부자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 3복이란 허약한 것, 못 배운것, 그리고 가난한 것이었다고 한다.
허약했기 때문에 술, 담배를 못해 장수하게 됐고, 못 배웠기 때문에 자신보다 나은 인재를 등용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돈에 눈을 떠 이재에 밝았다고 한다.
작고 하찮은 일과 크고 위대한 성취는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 청소부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일이라도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그가 바로 장차 큰 일을 해 낼 사람이다. 인구의 5%쯤 되는 인재들이 나머지 95%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오늘 수능 시험에서 상위 5%안에 들었다고 자만할 일이 아니요, 그 하위 95%에 속했다 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일은 더욱 아니다.
김수인/홍보회사 KPR 미디어본부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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