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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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1-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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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답례로 준 단돈 20 달러가 반정부 자금으로 둔갑했다." 1973년 기자는 일본 닛칸겐다이(日刊現代) 특파원으로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보도에 협력한 취재원에게 20 달러를 사례비로 주는 게 관례였다. 기자가 서울에서 만난 민주화 운동 인사도 같은 이유로 이 돈을 받았다. 지금보단 훨씬 큰 돈이지만 당시 역시 사회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액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20 달러가 일본인인 기자를 한국에서 내란 선동죄 혐의로 실형을 받게 했다. 결국 기자는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 무죄 입증을 위해 다시 서울에 왔다.

문제는 국가정보원 전신인 당시 중앙정보부가 취재 답례에 불과한 돈을 반정부 자금으로 몰면서 터졌다. 1973년 여름 기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심층 취재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고 민주운동 지도자 김지하 시인과 참여정부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한 이철 씨를 차례로 만났다. 이듬해 봄엔 유 전 의원을 다시 만나 단독취재했다. 이때 기자는 유 전 의원에게 20 달러를 사례비로 줬다. 중앙정보부는 이를 "정부 타도를 위한 자금"이라 날조해 기자를 기소했다. 당시 기소장을 보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긴급조치 1ㆍ4호를 위반한 내란 선동죄'란 무시무시한 문구가 담겼다. 결국 구속된 기자는 무려 20년형을 선고받았고 10개월을 형무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중앙정보부는 국제적 망신을 피하기 위한 꾀도 냈다. 기자를 내란 선동범으로 만든 20달러가 정작 기소장에선 사라졌다. 고작 20 달러로 한국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억지를 공식적인 문서로 남기긴 민망했을 것이다.

1973년 8월 고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으로 한국에선 반유신 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학생과 종교인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대적 시위를 전개하자 정부는 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하고 집단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란 단체가 배후 불온세력과 함께 반체제 운동을 벌인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시위가 반독재ㆍ반체제 성격을 띄자 사법당국은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180명을 한꺼번에 구속했다. 인민혁명당(인혁당)계 23명 가운데 8명이 사형을, 민청학련 주모자급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혁당계 지하 공산 세력과 재일 조총련 계열, 불순 학생운동으로 처벌받은 용공 세력, 국내ㆍ외 반정부 인사가 결탁해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게 구체적 혐의였다.

그러나 당시 기자가 목격한 민주화 운동은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사법당국이 꾸준히 인정해 온 사실이기도 하다. 기자 역시 무죄를 입증하기로 맘먹고 이달 11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런 결심은 당시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됐던 상당수 인사가 지금껏 왕성한 활동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 온 덕분이다. 대선에 출마했던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인태 전 의원, 이철 전 사장은 물론 여당인 한나라당 현역 의원도 적지 않다.

1975년 2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기자는 10년 동안 입국을 금지 당했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취재로 다시 방한했다. 이어 1992년과 1997년 대선까지 지켜보면서 비약적인 정치ㆍ경제 발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민주화 인사 하나하나가 국가적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 기자 신분이었지만 당시 만난 민주화 인사에 대한 존경은 지금도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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