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한국 기업의 성공 비결을 '스피드(speed) 경영'에서 찾았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반영된 경영전략이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 제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2월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보다 먼저 3D TV를 출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사주 중심의 과감한 결정을 가능케 한 스피드 경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기업들의 경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은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한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남보다 먼저,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아 경쟁에서 뒤쳐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급할 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5월호에서 속도만 추구하며 전진밖에 모르는 기업은 중요한 순간마다 잠시 멈춰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업보다 저조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34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슬로(slow) 경영'을 하는 기업은 스피드 경영에 나선 기업에 비해 3년간 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0%, 52% 많았다.
슬로 기업들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는 경영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HBR은 슬로 기업들의 경우 패스트(fast) 기업과는 다른 속도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스트 기업들이 운영 속도(operational speed)를 강조한다면 슬로 기업들은 전략 속도(strategic speed)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HBR은 운영 속도에 목을 멘 기업들은 생산주기 단축이나 생산량 증대 등에 집중하다 결국 품질 저하로 고전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품질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던 도요타가 시장 확대 과정에서 대규모 리콜사태를 빚은 것이 좋은 예다.
반면 전략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들은 고객에 대한 가치 전달 시간을 줄이는 게 최대 관심사다. 이들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얼마나 빨리 창출할 수 있는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고객을 위해 다양한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 만큼 슬로 기업은 패스트 기업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임직원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는다.
HBR은 또 슬로 기업의 임원들은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투철한 경영목표 달성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패스트 기업은 경영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임원들이 뜻을 한 데 모으기가 어려워 양적 성장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슬로 기업 직원들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때때로 역할을 전환하지만 패스트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업무에 종속돼 비효율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성공의 전제도 다르다. 슬로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엿보지만 패스트 기업은 단지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게 성공의 조건이라고 여긴다. 슬로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한다면 패스트 기업의 관심사는 오직 단기 실적 개선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슬로 기업 임직원들은 스스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패스트 기업 임직원들은 기존 고객의 만족도를 유지하기 위한 미세조정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HBR은 지적했다.
이밖에 HBR은 슬로 기업의 경영 시스템은 전사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만 패스트 기업은 직원들에게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제시하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HBR은 "기업의 전략 속도는 리더십에 달려있다"며 "경영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려면 주기적으로 상황을 점검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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