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지난 3월 퇴출에 해당하는 'D'등급 판정을 받은 성원건설. 회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중이다. 임직원 구조조정이 끝나면 500여명이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신용 A등급이었던 남양건설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 신청 이후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임금체불도 늘고 있다. 이 회사 하청업체는 90여개에 이른다.
중견건설사 연쇄 부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건설회사 연쇄부도는 금융을 비롯한 산업 전반의 체질악화를 불러올 수 있어 파장이 크다.
올해 들어 성원건설ㆍ남양건설ㆍ금광기업ㆍ풍성주택 등이 부도처리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은 부도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왔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건설사들이 잇따라 부도로 쓰러지자 하청업체들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임금체불로 부도직전에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경기 침체가 불러온 건설사 연쇄부도가 부동산시장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하거나 다른 산업까지 부실하게 만드는 일은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건설 옥석가리기, 이제 시작"
올해 들어 벌써 4개의 건설사가 쓰러졌지만 건설업계 옥석가리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채권은행들의 부실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각 채권은행들이 기업들의 작년 결산이 확정되는 지난 4월부터 상시 신용위험평가에 돌입했다. 신용 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1차 위험평가를 실시한 후 나머지 기업들도 단계적으로 평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결과가 도출되는 시기가 대략 6월쯤으로 기업들의 대규모 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과도 맞물려 있다.
신한은행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미분양 문제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높은 곳 위주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지난해 구조조정이 미완으로 끝났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엔 정부도 단단히 각오한 듯한 표정이다. 정부는 민간건설사들의 자구노력없이 또 다른 지원을 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나온 지방 미분양주택 양도소득세 완화 대책이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주택을 매입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5년한 한시적으로 완화해주기로 했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분양가 20%에 해당되는 할인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완화해주는 일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하면 안그래도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출금이 자칫 가계로 흘러들어가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또 건설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문제가 있는 업체들은 상시적 구조조정이 강력히 추진돼야한다"며 "시장 기능이 작동 되면서 경제가 좋아지고 이런 것이 맞물렸을 때 부동산시장이나 건설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들도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건설업의 부채비율이 사실상 500%에 이르러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경묵 KDI연구원은 "부실위험이 높은 건설사들이 모두 부도로 이어질 경우 금융권 전반에 영향을 끼칠 규모는 약 5조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며 "건설부분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진행된 구조적인 문제여서 구조조정을 통해 해소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적 구조조정, 협력업체 연쇄부도 불러"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은 다른 산업에 끼치는 여파가 크다. 광주 안청동에 공장을 둔 새한철강은 남양건설에 63억원 등 매출 채권 245억원을 제때 회수하지 못해 경영난을 겪다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건자재 업계와 레미콘 업계도 건설사들의 부도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시공사들이 공사대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하청업체나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재정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업 전반이 안정될 수 있기 위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선덕 건설전략산업연구소장은 대책으로 "추경예산을 통한 정부의 유동성 지원, 공공보증 확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와 금융권이 기업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며 "단지 서류상으로 나타난 수치만으로 기업을 평가할 경우 지난해 A, B 등급 건설사가 부도에 이르는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조건 구조조정을 할 경우 다른 산업이나 하청업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치명적"이라며 "금융권이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정부가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지난해 정부가 건설업계의 옥석을 가리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무조건 기업편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건설산업 전반의 체질강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도 "현재의 상황에서 PF대출을 계속 연기한다 해도 가능성 없는 건설사를 구제하기는 힘들다"며 "무엇보다 건설업체들의 자구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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