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가계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결과였다.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이상한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 200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신용불량자 수가 2004년 초에는 380만명 이상으로 2배 가량 폭증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신용카드였다.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자 카드사들은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받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던 시기였다.
카드 남용의 결과는 참혹했다. 2003년 새로 늘어난 신용불량자 108만명 중 84%가 카드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른바 ‘카드대란’의 추억이다.
이후 신용불량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6월에는 17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통계학적 착시 현상일 수 있다.
연체자 등록기준이 과거 ‘30만원 초과 3개월 연체 및 30만원 이하 연체 3건’에서 ‘50만원 초과 3개월 연체 및 50만원 이하 연체 2건’으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변경되기 이전의 기준을 적용할 경우 신용불량자가 줄어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최근 카드업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신용카드 모집인 수는 5만명을 넘어섰다. 1년 만에 44% 증가했다.
카드사 마케팅 관련 비용을 의미하는 카드비용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3조원에 달했다. 카드사 간의 과당 경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과다 경품 제공이나 연회비 대납 등의 불법 모집행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카드 돌려막기의 주범인 카드론 증가세가 가파르다. 2003년 29조원에 달했던 카드론 잔액은 2005년 5조원 규모로 축소됐다가 지난해 9월 말 현재 18조원으로 덩치가 커졌다.
금융위기 여파에서 벗어나면서 경기가 살아나자 카드사들이 영업 경쟁에 재돌입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새로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카드대란을 진화하는데 선봉에 섰던 경험의 소유자. 카드대란의 ‘트라우마’가 깊이 각인돼 있다.
당국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카드사의 대출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높일 계획이다. 카드사의 충당금 적립 규모가 현행보다 3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직은 한국 경제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만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업구조조정·가계대출 급증·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국이 2004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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