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이 물가뿐만 아니라 환율과 증시에도 영향을 미쳐 무역 1조 달러, 명목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 주식시장 시가총액 1조 달러 등 이른바 '트리플 1조 달러 시대'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소 등 민간 연구소들은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 급등과 구제역 사태 등 변화된 경제환경을 반영해 경제전망을 수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상향조정하고,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는 하향조정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가 올해 성장률을 3.8%, LG경제연구원은 4.0%로 제시했던 것이 3% 중반 정도로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목표치인 5% 성장률과는 크게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르면 물가는 각각 0.3%포인트, 0.6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성장률은 각각 0.35%포인트, 0.3%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연초에 올해 경제성장률 4.5%를 5%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국내 경제연구소도 미국 등 선진국의 지표가 예상보다 좋고 국제 유동성도 풍부하다며 성장률을 상향조정하는 등의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불과 한달 만에 세계 정세의 불안 등으로 결국 크게 후퇴한 것이다.
1일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달 초 발표하는 경제전망에서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86 달러에서 90 달러 중반으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LG경제연구원도 유가 전망치를 90 달러 후반대로 올릴 계획이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80 달러 후반대에서 10%가량 인상할 방침이다.
경제연구소들은 지난해 말 전망 때 리비아 등 중동사태를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물가상승률도 3% 초반에서 후반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 전후였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 중반까지, LG경제연구원도 기존 3.1%에서 3% 중반 이상으로 상향할 전망이다. KDI도 물가상승률을 3.2%로 내다봤지만 상승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가 및 곡물가 급등 등 대외적 변수가 있는 데다 대내적으로도 기상조건 악화와 구제역, 전셋값 상승 등 물가상승 요인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성장률과 국제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정부가 경제정책을 운용할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부 정책 공간이 좁아지면서 역풍을 맞아 돛을 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가 내걸었던 5%대 경제성장률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회의론이 불거졌다.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160억 달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경제성장률을 6% 내외로 발표했다가 같은 해 7월 유가가 폭등하면서 성장률을 1.7%포인트 내린 4%대 후반으로 수정한 바 있다.
당시 세계 경제 둔화, 환율 상승, 정책추진 제약 등이 성장률 하향 요인이 됐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성장률 잠식이 -0.8%포인트로 가장 컸다.
불행히도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2008년 성장률은 정부 수정치보다 못한 2.3%에 그치고 말았다.
유가 급등이 물가뿐만 아니라 환율과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자재 및 곡물가격 등 해외 발생 요인과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 감소를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국내 경제지표가 유가의 영향 이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성장률은 0.2%포인트 줄고, 경상수지 흑자폭도 20억 달러 정도 감소한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유가, 농산물·원자재가격 등 충격이 발생했지만 이제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망치를 수정하는 방안을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아직은 불확실성이 큰 만큼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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