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이혼 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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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3-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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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경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이혼이 만사다, 이런 말이 생길 법 하다. “여자가 생긴 것 같은데, 살살 숨기면서 흔적을 지워버려서 도저히 못찾겠어요. 내가 아주 피가 마르는 것 같애. 그리고 통장도 따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 같더라구?” 마치 동사무소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처럼 사무적으로 이혼 의사를 밝히는 여성의 모습은 당당하다. 말을 듣다보면 쯧쯧 혀가 차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럴 수 있겠네’ 싶은 마음이 앞선다.

여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은 남자들의 교활함과 민첩함, 전략지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여성들은 대개 감정이 상하면 상한다,고 털어놓고 분에 못이겨 때리기도 하고 “당신과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말해버린다. 남자들은 다르다. 일단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생각에 잠긴다. 경우의 수를 살피고 유불리를 헤아린다. 고즈넉한 야밤의 카페에 앉아 인터넷 정보도 수집하고 머릿 속에 경험담을 담아 놓는다. 만일에 사태에 대비한 플랜B도 짠다. 거의 생존전략처럼 이혼에 대비하는 것 같다.

“평생 내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이거 남편 앞으로 해놓은 게 있어서 그거 찾을 수 있을까요?” 여자의 한숨은 어제 저녁의 추억인지 5분도 안돼 본론이 나온다. 재산분할. 이혼 소송의 백미. 남자들이 오래전에 퇴화됐을 법한 전략지능을 사용하는 이유는 딴 게 아니다. 바로 재산이다. 내가 벌어놓은 거면 한 푼이라도 덜 뺏기기 위해서, 부인의 벌이로 한 재산 일궜다면 한 몫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서 머리를 쓴다. 딴 여자를 숨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아내 모르게 재산을 감추는 일이다.

자녀들이 다 커서 쿨하게 자기 삶을 멋대로 사는 경우라면 이혼은 아주 쉽다. 하지만 “애들 교육 문제도 있고 해서 질질 끄느라 이렇게까지 왔어요. 남편하고는 오만 정이 다 떨어졌어도 애들이랑은 같이 살아야 되잖아요”하며 참고 참다가 불리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이혼하는 여성들도 있다.

남자도 남자 나름이라고 억울하게 상황에 쫒기듯 이혼 당하는 분들도 계실 거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혼 소송에서 불리한 건 여성들인 것 같다. “요즘 중년 여성들이 제기하는 이혼 소송이 부쩍 많아졌다”는 변호사 친구와 술 잔을 기울이며 들은 얘기다.
흔히 남자들은 “여자들이 지들 멋대로 남편 월급 주무르며 살다가 그게 똑 떨어지면 이혼하자 대든다”고 말한다. 그 말 끝에 아주 “괘씸하다며” 분기탱천하는 추임새가 이어진다. “여자들이 세상을 뭘 알아?” 광분하는 남편들도 있다.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다. 여자들이 너무 한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세상의 풍습이 그리 한 순간에 바뀌는 게 아니었다. 마치 인터넷 여론처럼, 남편들이 떠벌이는 그런 말들이 여기 저기 많이 떠돌다 보니 그게 대세인 것 처럼 오해를 낳은 것일 뿐이었다. 대세론의 함정이다. 대세론은 대세론을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대세이듯 이혼에 관해 떠 도는 말도 그런 것이었다.

아직 이혼의 주도권은 남자가 쥐고 있다. 여성들이 경제적 생존에 능하고, 악착같이 모아논 돈도 제법 있는 게 추세인 건 맞다. 하지만 그런 능력과 재물을 전략적으로 생색내는 지능을 가진 건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재산분할에 대비한 이혼전략을 미리 짜는 정도의 지능은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여우니 살쾡이니 해도 여성은 군대 갖다온 남자처럼 전략을 구사하진 못한다. 남자들의 엄살이 심했다. 인정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이혼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여성들이 이혼에 당당하게 된 때문이다. 이혼이 훈장은 아니지만 상처도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 발맞추어 남자들의 방어술도 꽤 는 것 같다. 아마 남자들의 전략적 조심을 눈치 챈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 협의 이혼도 되는 데 굳이 재판 이혼을 하자는 데는 그만한 저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혼이 만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사를 이혼으로 해결하려 들어서도 안된다. 재산은 둘이 행복하게 잘 사는 수단이어야지 이혼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여성들의 당당함과 남자들의 전략지능은 합하면 시너지가 큰 요소인데, 왜 그걸 마다하나? 그러고 보니 마냥 정치판만 탓 할 게 아닌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김보경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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