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손실 책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금융권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법원이 금융위원회에 황 전 회장이 받은 '3개월 직무정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기 때문.
금융위는 우리은행이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15억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1조6200억원(약 90%)의 손실을 본 책임이 황 전 회장에게 있다고 판단, 지난 2009년 직무정지 결정을 내렸다.
은행법(54조 1항)상 3개월 이상의 직무정지 처분을 받으면 4년 동안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어 황 전 회장은 현직 박탈은 물론 2013년까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에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금융위의 결정은 타당성을 상실했으며, 황 전 회장의 퇴임을 이끈 법적 근거도 힘을 잃게 됐다.
이에 따라 황 전 회장의 금융권 복귀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있던 KB금융 등 대형 금융지주사로의 복귀는 어려워도 보험·카드·증권사 등으로는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 전 회장도 KB금융을 떠날 당시 금융권 복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특히 그의 최근 행보가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황 전 회장이 최근 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증권·삼성금융연구소 등이 밀집한 서울 태평로 인근에 자주 나타나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등 삼성그룹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전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항간에 떠도는 이수창 삼성생명 대표 퇴진설과 끼워 맞춰 해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삼성생명 대표에 취임한 뒤 5년째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또 차바이오앤디오스텍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금융권에서 실추된 이미지를 충분히 회복한 뒤 복귀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바이오 산업이 금융권에 사회적 이미지가 좋고, 능력을 입증할 경우 복귀 움직임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금융위가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할 방침키로 한 점은 변수다. 판결 과정서 법원의 결정이 바뀔 수 있으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복귀 시도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아울러 금융당국과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점도 황 전 회장에겐 부담이다.
한편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4년 초 그룹내 권력 투쟁에서 밀린 뒤 그해 3월 우리은행 행장에 취임했고, 2007년 우리은행장 연임에 실패한 뒤에도 2008년 KB금융지주 초대 회장에 취임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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