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간 아들이 보고싶을때마다 달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는 작가 김덕용이 나무판에 달을 담아 신작으로 발표했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그림은 손재주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화가 김덕용(50)은 아련한 향수를 그린다. 어머니에 대한 따뜻함과 그리움으로 물든 '김덕용 표' 작품은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재생하는 힘을 지녔다.
어딘가 조용히 응시하는 꼬마, 얌전한 여인, 커다란 항아리, 초승달, 둥근달, 진돗개, 진달래꽃도 정겹다.
캔버스를 버리고 택한 오랜친구, 나무 덕분이다. 나무결 따라 빛바랜 시간과 오래된 추억들을 끄집어낸 작가는 '목판의 연금술사'다.
5년만의 개인전을 앞둔 그를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만났다.
전시장1층, 지하1층 전시장에 내 건 작품들은 보기만해도 가슴이 착해지고 눈이 순해진다.
그는 “깎고, 문지르고 다듬고 수많은 반복과 반복을 통한 작품에 나의 따뜻한 감성을 담았다”며 "내 손에 들어오는 모든 재료들은 된장처럼 숙성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일까. 신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세월의 더께'로 묵직하다.
봄꽃을 쳐다보는 창가의 소년(봄봄2)도, 자개 한복치마를 부채처럼 펼치고 앉은 여인(자운영2), 다소곳한 여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아온 작품. 이번 전시에서 눈에띄는 작품은 '결-달이 흐르다'.
나무결따라 자연스럽게 탄생된 이전의 이미지들과는 달리, 일부러 나무결을 파고 그 위에 초승달과 상현달 보름달을 그려넣었다. 밤안개속 어스름달이 스치는 형상이다. 나무결들은 사의성이 강한 필선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 작품은 이번전시 작업중 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 지난해 아들이 군대에 들어갔어요. 같이 있을땐 잘 몰랐는데 예상치 못한 부대에 보내놓고 나서 가슴이 참 아팠어요. 전시준비로 정신없는데도 아들이 무척 보고싶더라고요. 아들이 보고싶을때마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면 달이 떠있더라고요. 몇번을 달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우리 선조들도 연락할 방법으로 찾은게 달이었잖아요. 둥근달을 보며 부모님 생각하고 님 생각하고, 그런점을 떠올리자 달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행동에 옮기게 된 것입니다. 자식을 생각하고 했기 때문에 정이 참 많이가는 작품입니다."
결- 달이흐르다3.2011 |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 하얀 그리움이 전이된걸까. 엉겁의 시간속 활처럼 휜 기억이 퉁~ 하고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광주출신 작가는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한국화를 했던 작가의 변신, 먹붓과 화선지를 버리고 택한 목판에서 오히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았다.
전통을 고수하던 한국화가들이 설자리를 잃어갈때, 새로움에 두려움이 없던 작가는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튀어올랐다. '옛 것'을 끄집어낸 작가는 홍콩 크리스티등 경매시장에서 한국 대표작가로 성장했고, 해외아트페어에서 솔드아웃 작가로 유명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장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재료와 도구에 겁이 없다. 아크릴,자개, 옻칠,단청기법등 모든 재료로 섭렵하며 '내 것, 묵은 맛'으로 만들었다.
그는 중학교때부터 "훌륭한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에도 시간성이 문제였다. 4시간안에 끝내야 하는 그림대회인데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오바한 시간을 달려 본부에 가서 사정사정해 그림을 접수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각종미술대회에서 최고상과 대상을 휩쓸었다.
그가 동양화를 전공한 것도 이때 그린 수채화때문이다. 스밈과 번짐…. 그림을 본 어른들이 "너무나 한국적인 느낌"이라고 칭찬했다.
한국화를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여겼다. 미대에 들어갔고 의심없이 동양화를 선택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다고만 생각했던 동양화는 준법, 부감법등 무슨무슨 법이 많았다. 이게 아닌데, 아쉬움속 대학원에 진학하기만 기다렸다. 대학원에 들어와 그나마 자유로움속에 우리나라 정서와 정을 담을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에 빠졌다.
"어느날 우리나라 낡은 절들을 돌아다니다 결국 발견했습니다. 단청색이 바스라히 떨어진 것을 보고 우리의 색채와 미감을 느꼈습니다."
"이것이다. 작품에 넣어보자." 지금껏 구사하고 있는 단청기법이 탄생된 순간이다.
88년, 화선지를 버리고 나무판을 선택했고 재료를 찾아다녔다. 낡고 오래된 느낌. 미술사적으로 넘어서고 싶었다. 하지만 생계가 문제였다.
오랫동안 계원예고 강사로 지냈다. 학교에서 입시선생으로 밥벌이하며 작업하는 반복되는 생활, 생각의 깊이가 얇아졌다.
"40이 넘어까지, 더이상은 안된다." 2002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겨울 앞두고 사표내는게 아니더라고요. 계절이 주는 추위가 같이와서인지 더 움츠려들더군요. 그땐 참 후회많았어요."
이젠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로 미술시장에서 확고하게 작품의 가치와 브랜드를 구축했다. 작가는 "정신적인 가난이 깊어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우면 좋은 작업은 나올수 없다"는 초심을 명심하고 있다고 했다.
오래된 미래, 2010, 나무에 단청기법, 각113.5x126cm, 8점 SET_ |
이번 전시에는 나무로 책을 만들고 서랍도 달린 거대한 책장도 눈길을 끌고 있다. 봉순이 언니, 다듬이소리, 기도하는 여인, 꽃신, 아홉번째집,그남자, 꿈꾸는 지하방, 외로움등 책 제목으로만으로도 감성을 자극한다. 온기가 감도는 안스러운 잔영같은 것들….
"책들은 제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읽었던, 읽고 있는 책입니다. 명사십리라는 책은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친구와 놀러갔던 곳이어서 넣었고요, 모두가 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결혼까지 내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책은 기록자체이고, 또 우리시대 대표적인 지식저장창고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지만 결국은 나의 모습을 미래에 볼수 있는 것, 그래서 작품제목을 '오래된 미래'지었어요."
삐뚤빼툴 아무렇게나 가로세로로 꽂혀있는 책들은 오히려 정겹다. "원래는 세로로 반듯하게 세우려고 했는데 그렇게 정리정돈된 책을 보니 부담스럽더라고요."
반닫이, 장롱, 마루바닥 뜯은 것을 사들여 나무 결과 결사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작가는 나무작업을 통해 세상이치도 깨달았다.
"세상사는게 그럽디다. 계획한대로, 설정된대로 되지 않아요.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에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생명과 따뜻함을 불어 넣는 것, 그 속에 내 작품은 존재합니다. 소년같은 감성을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입니다. "
곰삭음의 미학, 멋내지 않은 소박한 이야기가 담긴 김덕용의 개인전 '시간을 담다'전에는 책 시리즈 등 소품을 포함해 신작 50여점이 나온다. 전시는 20일~ 5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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