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는 남매버전의 '다이하드' 같은 영화"

<김재범의 영화in> 26일 개봉 영화 '헤드' 조운 감독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지난 17일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수줍음을 넘어 대인공포증까지 의심될 정도로 낯을 가리는 성격 같았다.

하지만 지난주 압구정동 한까페에서 만난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돼 있었다.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자신감이 넘쳤다.

영화 ‘헤드’의 조운 감독(37). 이중인격자일까. 그는 “의도한 모든 게 뜻대로 됐기에 기분이 좋을 따름”이라며 웃었다. 숙제를 막 끝낸 초등학생처럼 조운 감독은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26일 개봉하는 `헤드`에는 시체의 머리를 잘라내는 새로운 범죄가 등장한다. 자살한 천재 의학자의 머리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우연히 그 머리를 배달하다가 납치된 남동생(류덕환 분)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열혈 여기자(박예진 분)의 종횡무진 추격전을 다룬 영화다. 



- 언론시사회 당일 무대서 언급한‘공황장애’가 실제로 있나.

“집에 와서 인터넷을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그냥 농담처럼 한 말인데 실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것처럼 다들 쓰셨더라. 그냥 난생처음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다 보니 떨려서 그런 것 뿐 공황장애는 아니다. 당시 떨리는 기분을 영화 속 한 인물에 빗대어 말한게 와전됐다. 아주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다.”

- ‘헤드’는 기본적으로 투톱 구조의 영화인데 조금은 그 느낌이 헐겁단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헤드’는 누나가 동생을 구출하는 얘기다. 누나가 가는 길목마다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얽히고설키는 과정이 얘기의 큰 뿌리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려고 하니 이른바 ‘주적’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백윤식 선생님이 맡은 백정이 대신했고, 백정의 주변 인물들이 누나인 홍주를 따라가는 얘기를 더하면서 조금은 복잡한 스토리 구조가 나온 것 같다. 복잡한 인물 관계도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인물 간 강약 조절에 미흡한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캐릭터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재미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영화가 ‘헤드’다.”

- 영화장르가‘추격’이다. 이미 대박난 같은 영화장르가 있는데 고민하지 않았나.

“처음 영화 장르 자체를 규정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느꼈다. 지적한 대로 ‘추격’이란 단어에 위험성도 알고 있었다. 그 단어로 아주 유명한 다른 영화와 연장선에 놓일 수 있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향했던 영화는 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액션영화다. ‘트루라이즈’ ‘라스트 액션 히어로’ 같은 영화. 특히 제일 좋아했던 것은 ‘다이하드’ 시리즈였다. 긴장감 넘치고 영화적 쾌감이 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영화. 더 나아가 그 속에 가족애가 담긴 영화 말이다. 이런 부분들을 내 영화에 어떻게 녹이고 그 모든 것을 함축하는 단어를 고민했다. 사실 ‘헤드’의 소재 좀 과격하지 않은가. 장르적 특성과 영화 줄거리만 보면 어둡고 잘 짜인 스릴러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난 신나고 경쾌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른바 ‘남매’버전의 ‘다이하드’ 정도. 결과물에 만족한다.”

- 영화는 정말 숨 쉴 틈 없이 달린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롤러코스터란 지적이 정확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점층적 전개 구조가 너무 싫다. 롤러코스터도 타고 난 뒤에는 ‘어 끝났나?’란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 혼을 쏙 빼놓지 않는가. 시작도 갑작스럽게 가고.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분명 관객들에겐 낯설 수 있지만, 한국영화에 이런 느낌의 영화도 분명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조금은 생소한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 독특했다. 구상 계기는.

“미국 여기자 애니 체니가 쓴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란 책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미국 내 인체 시장에 대한 비리를 파헤친 책이다.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인체가 부위별로 판매 되고, 그 부위들이 일반 포장 배달로 미국 전역에 배달된다는 실제 내용을 담았다. 너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만약 택배 포장이 찢어져 토막 난 시체가 밖으로 튀어 나오면 그걸 본 택배 직원은 어떤 느낌일까. 꽤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포장을 뚫고 튀어나온 시체는 어떤 부위가 좋을까. 고민 끝에 결국 머리로 결정했다. 머리로 결정하고 나니 주인공 홍주와 시체 머리의 버디 무비 정도로 압축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 안에서 재미를 찾기도 쉬울 듯 했다.”

-백윤식이 연기한 백정은 누가 봐도 매력적 악당인데, 영화 속에선 그 느낌이 덜 한 것 같다.

“백정도 사실은 생활인이다. 먹고 사는데 급급한 일반인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악인은 아니다. 사실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던지 궁지에 몰렸을 때 악인이 될 수 있고, 그런 부분을 삶에 집착이자 애착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다, 기존 영화에선 악인은 항상 인상 찌푸리고 어둡게 그렸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 싫었다. 캐릭터적인 부분에서도 생활인이던 백정이 그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던 상황을 그릴려 노력했다. 자연스러움을 가장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백윤식 선생님이 너무 잘 표현해 줬다고 생각한다.”

-홍제의 시퀀스도 좀 허전했다. 좀 더 홍제를 괴롭히길 바랐는데.

“혹시 좀 더 피가 난무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한 질문인가. 개인적으로 잔혹한 영화를 못보고 성향 자체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피가 나거나 잔혹한 부분을 배제하고 만들어 나갔다. 그런 부분이 없더라도 나름 재미와 긴장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란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색다른 스릴러와 액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새로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 그런 부분에 포인트를 주고 관람 해주길 바란다.”

-결국 속도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투톱에 대한 비중이 흐려진다.

“워낙 여러 인물이 나오다 보니 그런 느낌이 생겼을 듯 하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더라. ‘헤드’의 영화적 구조는 예전 오락실에서 유행하던 ‘슈퍼마리오’란 게임과 비슷하다. 홍주가 단계별로 악당들을 물리치면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백정과 만나게 된다. 기존 장르 영화에서의 주인공과 악인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헤드’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난 기존의 방식을 비틀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시나리오단계부터 각각의 캐릭터에 녹여 내려 노력했다. 홍주와 백정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들을 끝까지 끌고 가고 싶었다.”

- 언론 시사회 뒤 데니안의 연기에 대해 솔직히 말들이 많았다.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감독의 의도를 정말 100% 소화한 유능한 배우다. 영화 속 데니안의 어눌한 말투는 모두 계산된 연기였다. 빈틈 하나 없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욕심만 앞선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때문에 말투도 1980년대 초반 아나운서의 불편한 말투로 가자고 내가 제의를 한 것이다. 그런 부분이 연기력 미달로 흘러가서 안타깝다. 이건 분명한 의도며 데니안과 내가 같이 만들어간 부분이다. 첫 촬영이나 리딩에선 정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너무 웃어서 배꼽이 빠질 정도였다. 정말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여러 사람이 있지만 데니안을 꼭 말하고 싶다. 내가 원한 100%를 그려내 줬다.” 

- 반면 박 회장으로 나온 우현의 임팩트는 정말 강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 밝히는 것 같다. 사실 우현은 친 매형이다. 영화 속 떡볶이 집 주인 역할은 우현의 아내이자 내 친누나다. 매형은 예전 내 단편 영화에도 출연해줄 정도로 큰 응원군이다. 이번 ‘헤드’에서도 몇 장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강한 의욕을 보여주셨다. 박회장 역할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매형을 생각하며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영화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 매형이 박 회장 역할에 크게 만족해하며 출연을 자청할 정도였다. 누나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역이지만 영화 속에서 꽤 중요한 배역인데 출연 제의에 선뜻 응해줘 고마웠다. 누나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초창기 공연 당시 여주인공 선녀로 활동한 배우 조련이다. 참고로 라디오스타에서 안성기씨 부인역이 우리 누나다. 그 외에 왕의 남자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매형과 누나 둘 다 정식 출연 제의를 통해 캐스팅했다. 절대 혈연을 통한 낙하산이 아니다.(웃음)”

- 연출한 단편 ‘광화문 연가’나 ‘은장도전’을 보면 주특기가 액션보다는 SF쪽이 더 맞을 듯한데, 액션으로 데뷔를 했다.

“사실 광화문 연가도 장편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였다. 장편에선 배우들의 액션이 많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액션이 기존과는 다른 느낌이다. 나는 ‘아저씨’와 같은 영화의 액션이 아닌, 다른 느낌의 액션을 원한다. 일종의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은장도전도 마찬가지다. 상업 영화를 만들어 가는 입장에서 관객들의 취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가 관객 일때 영화상에서 쾌감을 느꼈던 부분은 배우들의 움직임이었다. 때문에 단편 작업들을 하면서 움직이고 달리는 것에 포인트를 줬다. 첫 영화라 그런 부분을 이어갔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쾌감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 액션영화광이다 (웃음).”

-이번 ‘헤드’도 마찬가지고, 이전 연출했던 단편들도 보면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주야장천 달린다. 달린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 듯한데.

“제대로 봤다. 내 영화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달린다. 개인적으로 달린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내가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인지 혹은 뭔지 모르겠지만 달리는 행동이 갖고 있는 운동성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달리는 가운데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사건이 영화적인 쾌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 역시 달리는 영화다.”

-구상 중인 차기작은 어떤 내용인가.

“이미 시나리오가 완성돼 있다. 사극 버전의 ‘헤드’ 또는 ‘델마와 루이스’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고 보니 차기작도 달리는 영화다. 한 번 시원하게 달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