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한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한명 있다. 바로 대통령의 평생의 반려자 퍼스트레이디다.
◇조용한 내조형
10명의 퍼스트레이디 중 다수는 조용히 대통령을 내조하는 데 주력했다.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1948.07∼1960.04 재임)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타이핑과 통.번역을 도맡았던 실질적 비서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미군정으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문서 타피잉을 했고, 대통령의 영문구술을 듣고 외교 문서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1988.02∼1993.02) 부인 김옥숙 여사도 조용한 내조형이다. 다소곳한 ‘현모양처’ 형 이미지로 승부했다. 노 대통령 재임 중 모든 행사를 비밀에 부쳤고 일절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앗다.
김영삼 전 대통령(1993.02∼1998.02) 부인 손명순 여사는 평소 “남편이 어떤 자리에 있든 안사람이 너무 나서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손 여사는 ‘스트레스’로 인해 방광염과 백반증으로 고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3.02∼2008.02) 부인 권양숙 여사는 ‘조용한 청와대’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권 여사는 대통령 임기 후반기부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는 등 대외 활동의 보폭을 넓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정치적 발언 등을 자제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치 않았다.
◇정치력 발산형
반면 적극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했던 영부인들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1963.12∼1979.10) 부인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의 귀’ 역할을 했다. 육 여사는 정보와 민심을 차단하는 일은 곧 정치인의 장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라 생각해 손수 민원을 챙겼다고 한다. 육 여사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고 한다. 1970년 6월 나환자촌을 방문한 육 역사는 뭉그러진 환자들의 손을 거리낌없이 감싸 잡았고 환자촌은 그만 감격의 울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1980.9∼1988.2) 부인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영부인’으로 불린다. 이 여사는 대통령 취임식에 남편과 함께 입장하고 함께 손을 흔드는 등 정치적 입김이 강했다. 이 결과 정치개입과 친인척 비리로 언룩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8.2∼2003.2)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남편과 동행했다. 이 여사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단독 해외순방 영역을 개척했다. 2002년 5월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최초로 남편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는 역사를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2008.2∼현재) 부인 김윤옥 여사는 적극적으로 남편을 보좌하면서 핵심적인 국정기조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김 여사는 지난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동안 오·만찬 메뉴를 직접 고르는 등 적극적인 내조 외교를 펼쳤다.
◇그림자 동반형
집권기간이 짧은 대통령일수록 영부인도 별다른 영향력을 보이지 못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1960.8∼1962.3) 부인 공덕귀 여사는 내각제 개헌으로 인한 상징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영부인 자리를 썩 탐탁치 않게 여겼다. 경무대(현재 청와대) 사는 것조차 싫어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 사저에 머물고 싶어 했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1979.10∼1980.8) 부인 홍기 여사는 헌정사상 249일이라는 최단 기간 영부인 자리에 있었다. 청와대 입성에 앞선 인터뷰에서 “살림이 취미인 구식 여자”라고 자신을 소개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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