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시진핑시대 핵심100인] <47>셰쉬런 – 1700조원 중국 예산 관리자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1-09-14 17:3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올해 중국 중앙정부의 예산은 지난해 대비 11.9% 늘어난 10조220억위안이다. 한화로는 약 1702조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올해 예산규모가 309조인 것과 비교하면 5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국고를 관리하는 부서의 최고책임자는 바로 셰쉬런(謝旭人) 재정부장이다.

셰쉬런은 2007년부터 중국 국무원 재정부 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교육비, 사회보장비, 공안비, 국방비 등의 중국 정부예산은 그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철저한 실무형 인사인 셰쉬런의 기억력이나 숫자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왠만한 정부예산과 관련된 숫자는 모두 암기하고 있으며 복잡한 계산이라도 순간적인 암산으로 개략적인 답안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재정부 장관에 올라서기 전에는 중국의 세수를 총괄하는 세무총국 국장이었다. 중국의 세수 역시 우리나라의 규모를 압도한다. 지난해 중국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세수는 공개된 것만 7조7390억위안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00조원이다. 이는 관세와 선박톤세, 경지점용세, 부동산 취득세 등을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지난해 세수인 261조원의 5배에 해당한다. 셰쉬런은 세무총국 국장을 2003년부터 4년간 역임했다. 단순하게 계산한다면 그의 손을 거친 국세만 5000조원이며, 그의 결재를 통해 집행된 예산만 6000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귀신 같은 기억력과 숫자감각

그와 함께 세무총국에서 일했다는 한 동료는 잡지 ‘인물(人物)’에서 “세쉬런은 무척 섬세하고 주도면밀하며 세밀한 사람으로 각종 수치들을 귀신처럼 암기하고 다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셰쉬런이 각 부서장들을 모아놓고 정책을 소개할 때면 항상 커다란 칠판을 가져와서는 칠판에 기록하면서 설명했다”면서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도표를 직접 작성해 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대부분 자료를 보지 않은 채 표를 작성했다”고 전했다. 세쉬런의 설명을 쭉 듣고 나면 정책의 배경과 목표점, 결과 등이 명확하게 와 닿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셰쉬런은 매사 업무에 있어서 완벽을 기했으며 부하직원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뛰어난 업무능력에 더해 꼼꼼하게 자기관리를 해온 셰쉬런은 중국인들이 신망하는 관료 중 한명이다. 그는 또한 국제적으로도 지명도가 높다. 2009년 10월에는 영국의 잡지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으로부터 ‘2009 아시아 최우수 재무장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소식은 당시 중국의 언론으로부터 대서특필됐다.

◆아시아 최고 재무장관

당시 ‘이머징 마켓’은 셰쉬런 부장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실시해 전세계에서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벗어나고 세계경제에도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 재정부와 발전개혁위원회가 추진한 4조위안 규모의 투자계획과 국가세무총국의 수출 환급조치, 재정부의 ’10대산업의 진흥계획‘ 등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셰쉬런 부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해 시의적절한 거시경제 조정정책과 적극적인 재정정책, 확장적 화폐정책, 내수활성화 정책 등을 실시했다”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고속성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확장적 화폐정책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전제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잠재적인 위험과 경제구조적인 모순, 발전방식의 전환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2009년 경고했던 인플레이션은 2011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안정을 정부 재정정책의 우선에 두겠다”고 말했다. 셰 부장은 “성장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운용하겠다”며 “올해 중국정부의 GDP대비 재정적자폭을 지난해 2.5%에서 0.5%P 줄어든 2.0%로 줄였다”고 소개했다.

◆기계공장 노동자로 15년

중국의 국고지기인 셰쉬런은 1947년 10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태어났다. 그가 쓰는 중국어에는 아직도 닝보억양이 남아있다. 그는 닝보에 위치한 한 기계공장 노동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에 닝보시 전하이(鎭海)기계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 근로자에서 시작해 기술자, 동력설비 과장, 부공장장으로 승진했다. 무척 성실했으며 무엇보다 탁월한 기억력과 두뇌회전으로 승진이 빨랐다. 그는 이 공장에서 15년여를 일한 이후 공장의 서기로부터 추천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다.

34세였던 1981년 9월 그는 저장대학 공업경제관리학과 간부과정에 들어갔다. 3년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1984년 저장성 위야오(餘姚)현 부현장(副縣長)으로 관직을 시작했으며 인근에 위치한 인(鄞)현에서 현장을 역임했다.

그의 업무능력과 수리능력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지자 저장성 지방정부는 그를 성회(省會, 성의 중심도시)인 항저우(杭州)로 불러올렸다. 그는 저장성 성정부 계획경제위원회의 투자반 주임을 맡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정부의 경제를 총괄적으로 기획하는 종합계획반의 주임을 역임했다. 맡은 일은 주로 지방세수와 예산기획 등이었다. 5년동안 저장성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에 대한 소문은 베이징에까지 퍼져나갔다. 



◆장쩌민시절 중앙무대 진출

1989년 공산당 총서기에 등극한 장쩌민(江澤民)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개방된 지역인 상하이(上海),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 등지의 유능한 관료들을 대거 중앙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 셰쉬런도 국무원 재정부 정부예산사(司)로 발탁된다. 공장 근로자로 출발해 저장성에서 이름을 떨치던 셰쉬런이 드디어 중국 중앙정부 핵심부에 발을 내딛게 된 것.

그는 13억인구를 가진 대국의 국고를 관리하는 부서에서 8년을 근무한다. 1992년 주룽지(朱鎔基)당시 상하이시 서기가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올라오면서 셰쉬런의 관료생활은 더욱 빛을 보게 된다. 그는 재정부 정부예산사 부사장으로 5년을 근무한 후 1995년에 차관급인 재정부 부부장까지 승진했다. 특히 1993년에서 1994년까지 2년동안 주룽지 부총리가 주도한 재정관리체제 및 세제제도개혁과정에 핵심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주룽지 당시 상무부총리는 셰쉬런의 재능을 남달리 아꼈다고 전해진다.

1998년 국무원 총리에 올라선 주룽지는 실물경제에 경험이 없던 셰쉬런을 중국농업발전은행의 은행장으로 보낸다. 실물경제도 중요하거니와 중국의 3농(농민, 농업, 농촌)문제는 당시 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였다. 셰쉬런은 농업발전은행에서 2년여 근무한 후 중앙금융공작위원회 부서기로 자리를 옮겼으며 1년 후인 2001년부터는 국가경제무역위원회 부주임을 맡았다. 국가경제무역위원회는 현재 상무부의 전신으로 2003년 대외경제무역부와 통합됐다.

◆농업세, 기업소득세 개혁

2003년 초 원자바오(溫家寶) 내각이 구성되면서 셰쉬런은 국가세무총국의 국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세무총국 국장으로 있던 2005년 농업세를 폐지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농업세 폐지는 현재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인 장핑(張平)이 안후이(安徽)성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 성공한 정책이다. 이 정책건의가 받아들여져 2006년부터 농업세가 폐지됐다. 이와 함께 셰쉬런은 내외자 기업소득세를 단일화시켰다. 세제상 특별대우를 받던 외자기업과 중국 로컬기업 사이의 형평성을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법 단일화, 세제 간소화, 공정한 조세 부담 등의 원칙을 세웠다.

2007년 8월 성추문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던 진런칭(金人慶) 당시 중국 재정부장이 급작스럽게 사임했다. 중국정부는 진 장관이 개인적인 이유로 사임했으며, 국가 싱크탱크인 국무원의 개발연구중심 부국장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지난 6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진런칭 당시 중국 재정부장이 사임한 실제 이유는 대만 여성 공작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진런칭 전 부장을 비롯해 쉬융웨(許永躍) 전 국가안전부장 등 고위공직자 10여명이 베트남 난민 출신 여성 리웨이(李薇•당시 44세)와의 관계로 인해 옷을 벗었다는 것.

◆4조위안 경기부양책 주역

셰쉬런은 후임 재정부장으로 임명된다. 재정부로 옮기기 전 국세총국에서 4년을 일하는 동안 중국 연간 세수입은 거의 배로 증가했다. 갈수록 커지는 국가의 금고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는 취임 초기 재정적자와 국채자금 규모를 줄이며, 경제구조 조정 최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삼농문제 개선을 위한 재정정책을 펼쳤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4조위안에 달하는 역사적인 경기부양책을 주도적으로 집행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지표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그는 “구체적으로 식량, 목화, 채소, 사탕수수, 육류, 고기, 계란, 유제품 등 생활필수품의 생산과 공급을 장려하기 위한 보조금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물류산업에도 유통단계별 비용을 줄였다”면서 “동시에 화학 비료, 농약, 비닐 등 농업용 생산 수단의 공급 및 가격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