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진형 기자) 북송 4대가로 일컬어지는 시인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노년에 관직에서 벗어나 우량예의 산지인 지금의 쓰촨 이빈(宜賓)시에 자리를 잡고 풍류를 즐겼다. 이 기간중 그가 우량예의 원류인 요자설곡(姚子雪曲)를 맛보고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杯色增玉,白雲生谷 (술잔은 옥색으로 빛나고, 골짜기에 흰구름 걸쳐있네)
清而不薄,厚而不濁 (맑으나 가볍지 아니하고, 두텁지만 탁하지 아니하다)
甘而不噦,辛而不蟄 (달지만 역하지 아니하고, 독하지만 이를 숨기지 않는다)
후대사람들은 이 시를 두고 우량예의 맛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며 감탄하고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우량예의 탁월한 품질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량예는 1952년을 시작으로 국가가 주관한 다섯번의 주류품평회에서 1963년, 1979년, 1989년 세차례 1위를 차지하고 1984년에도 금상을 차지하였다. 또한 미국의 카터 대통령 방중시 덩샤오핑이 만찬주로 내놓아 마오타이주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바이주가 되었다.
우량예는 지금의 ‘우량예(五粮液)’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1500여년이 걸렸다. 우량예의 역사는 남북조시대(420~589년)까지 올라간다. 이족(彛族)들이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공식을 혼합하여 ‘잡주(咂酒)’를 만들었고, 이것이 각종 곡물을 이용하여 양조하는 것의 효시가 되었다. 당(唐)대에는 융주(戎州) 지역 관영 양조장에서 네가지 곡식을 혼합하여 ‘춘주(春酒)’를 만들었다.
743년 두보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지금의 이빈인 당시 융주에서 춘주를 맛보고 즉흥시를 지었다. ‘짙푸른 옥색의 춘주를 받쳐들고 연분홍 여지열매를 까는구나(重碧拈春酒 輕紅擘荔枝)’ 이때부터 춘주는 ‘중벽주(重碧酒)’로 불렸다.
우량예의 양조기술 발전과정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요자설곡(姚子雪曲)’이라는 술의 등장이다. 송대 이빈시의 유지인 요(姚)씨 가문이 만든 술이었는데 옥수수, 쌀, 수수, 찹쌀, 메밀 등 다섯 가지 곡물을 원료로 하여 만들었다. 당시에 이 술을 두고 문인들은 요자설곡이라 불렀고 일반 평민들은 ‘잡양주(雜粮酒)’로 불렀다.
그러나 청대 말기 관리 양혜천(楊惠泉)은 “이처럼 좋은 술을 잡량주라고 하는 것은 너무 저속하다. 요자설곡이란 이름도 고상하기는 하지만 이 술의 정취를 그대로 들어내지는 못한다. 이 술은 다섯가지 곡식의 정수를 모아 만든 옥과 같은 술이니 우량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이 때부터 ‘우량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현재 우량예그룹(五粮液集團有限公司)은 국연주, 우량춘주, 동방교자, 금육복례주, 경주 등 수십여 종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다양한 도수, 가격, 용량, 브랜드를 앞세워 현재 100여 종 이상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월드브랜드평가실(World brand value lab)의 2010년 발표에 따르면 우량예의 브랜드 가치는 595억1400만 위안(한화 약 10조7000억원)으로 중국내 20위를 차지하였다.
우량예그룹은 현재 주종인 주류업 이외에도 합성수지가공, 제약, 전자기재, 운송, 대외무역, 샴푸, 화장품, OLED 모니터 등의 업종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동차 산업에도 진입하였다.
보통의 우량예는 소매가로 52도 250ml가 14만원, 우량예1618은 52도 500ml가 31만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고유번호 인터넷 조회와 홀로그램 등으로 진품 판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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