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갓 취임한 은행장이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쯤으로 치부했다.
관료주의에 물든 정책금융기관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IB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김 행장은 해외 프로젝트가 점차 대형화하는 추세 속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IB 부문의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도 명확했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전략 수립 등 다른 IB들이 영위하는 시장에 뛰어드는 대신 금융자문 및 금융주선 업무에 주력키로 한 것이다.
김 행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35년 동안 쌓은 정책금융 노하우를 바탕으로 금융주선과 금융자문 분야에서 충분히 IB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금융회사도 해외에서 통할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김 행장이 수출입은행을 글로벌 IB로 변모시키겠다고 공언한 지 반년 남짓. 이제 다른 금융회사들이 수출입은행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먼저 찾아오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 7월 수출입은행 금융자문실에 과장급 직원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향후 1년간 수출입은행의 금융자문 및 금융주선 업무 노하우를 배우게 된다.
장기금융 기법을 익히기 위해 다른 은행에 직원을 파견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해외 프로젝트에 금융을 제공하는 기법과 해외 자금 조달 경험을 배우기 위해 직원들을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회사는 해외 플랜트와 자원개발, 녹색산업 등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업무 경험이 거의 없다.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해외 사업자와 협상을 끝낸 후 신디케이션(주간사 은행의 주도 아래 자금 지원을 위한 차관단을 구성하는 것) 단계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출입은행 금융자문실 관계자는 “은행들도 신디케이션 전 단계에서 어떤 업무가 이뤄지는지 배우고 싶어 한다”며 “이번 직원 파견도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수출입은행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직접 금융자문을 맡고 있는 '글로벌인프라펀드(GIF)'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GIF는 국내 건설사의 해외 인프라사업 진출을 위해 민관이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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