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스타힐스

<걸어서 삼국지 기행12-쓰촨성편> 2-1 촉도(蜀道) 복원, 삼국지 영웅들의 부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2-03-13 08:2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삼국지의 길을 잇는 청도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청두(成都)에서 하룻밤을 묵은 본지 '걸어서 삼국지 기행 취재팀'은 쓰촨성 일대의 삼국지 유적 탐방을 위한 본격적인 여정에 돌입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청두에서 동북쪽으로 180km 가량 떨어진 광위안(廣元)시였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3시간 이상 달려 광위안시 지엔거(劍閣)현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 있던 현지 여유국(관광국) 관계자들이 취재팀을 반갑게 맞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전에 짬을 내 인근 시장을 둘러봤다. 시장에 들어서자 예사롭지 않은 성루가 눈에 들어왔다.

종구로우(鐘鼓樓)라고 불리는 이 성루는 지엔거현의 삼국시대 당시 지명인 난안(南安)군의 주위를 둘러싼 성벽의 일부로 명(明)대인 1515년에 중건돼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게 현지 여유국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유래로 따지면 1800년 이상, 현재의 성루도 500년 이상 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산이었지만 등짐을 진 상인들이 성루를 쉼 없이 오갈 만큼 현지인들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건축물로 인식되는 듯 했다.

그렇게 수백년의 시간을 민초(民草)들과 함께 호흡하며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성루가 대견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광위안시 지엔거현에 있는 종구로우(鐘鼓樓). 삼국시대 촉(蜀) 난안군을 방비하던 성벽의 일부로 명(明)대인 1515년 중건돼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이다.


지엔거현에서의 점심 식사가 끝날 즈음, 현지 여유국 책임자가 돌연 계획에 없던 일정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빠듯한 시간 때문에 처음엔 잠시 곤혹스러움을 느꼈지만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오히려 만사를 제쳐 두고서라도 꼭 가서 봐야겠다는 열의가 솟구쳤다.

여유국 관계자들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란마창(攔馬墻)이었다. 말을 가로막는 담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입구부터 잡초들이 사람 무릎 높이로 자라 있어 관광객들이 찾는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승합차에서 내려 10여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울창한 숲 속으로 한 갈레 오솔길이 나 있었다.

역시 개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길이었다.

“이곳은 산시(陝西)성 등 외부에서 촉(蜀)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인 촉도(蜀道) 가운데 원형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구간입니다.”

취재팀을 란마창으로 이끈 여유국 책임자의 말이었다.

기원전 3세기 진(秦)나라가 험준한 산세를 뚫고 촉(蜀)으로 들어오기 위해 만든 고촉도(古蜀道)를 취재팀이 걷고 있다.


이 길이 처음 닦인 것은 기원전 3세기, 지금으로부터 2300여년 전이었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당시만 해도 미개척 지역이었던 촉을 정벌하기 위해 만든 길.

그로부터 500여년 후인 서기 214년,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이 길을 통해 들어와 토착 세력을 멸하고 촉한(蜀漢)을 건국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에 들어서자 마치 진나라 군대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유비군의 함성 소리가 마치 지척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주변에 널린 암석을 깔아 만들었다는 길은 닳고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삼국지 영웅들을 비롯한 수많은 백성들이 때로는 부푼 꿈을 안고, 때로는 좌절을 안고 이 길을 지났을 터였다.

길 좌우로는 높이 70~80cm 정도 되는 돌담이 쌓아져 있었다. 전마(戰馬)가 지나갈 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조성한 일종의 울타리였다.

이 길을 란마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마(戰馬)가 도로를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로 쌓은 울타리인 란마창(?馬墻). 가장 오래된 것은 이미 23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란마창을 둘러싼 숲은 온통 측백나무였다. 장정의 팔 길이로 세 아름이 넘을 만큼 굵었다. 한 여유국 관계자가 "둘레가 2m 이상 되는 나무는 진나라 때 심은 것"이라고 귀뜀해줬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아방궁(阿房宮)을 지을 때 이 곳의 측백나무를 베어다가 대들보로 썼다는 전설도 전해오고 있다.

한(漢)과 당(唐)의 수도이며 장안(長安)이라고 불렸던 산시성 시안(西安)에서부터 청두까지 이어지는 외길인 촉도의 전체 길이는 대략 300km. 란마창의 길이는 800m 정도다.

촉은 주변이 온통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거대 분지다. 예로부터 중원 세력은 비옥한 촉을 손에 넣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들어오는 길을 찾지 못해 번번히 실패했다.

오죽하면 당나라 때 시선(詩仙)인 이백(李白)이 촉도를 일컬어 “하늘보다 더 오르기 힘들다”고 표현했을까.

촉을 최초로 점령한 사람은 진시황의 고조부뻘인 진 혜문왕(惠文王)이다. 그는 촉을 얻기 위해 한가지 꾀를 냈다.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든 후 황금 똥을 싼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탐욕스러웠던 촉왕은 이 소를 갖기 위해 스스로 중원으로 나오는 길을 냈다.

진 혜문왕은 이 길로 들어와 촉을 멸하고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이 때부터 촉도를 금우도(金牛道)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란마창 주변에는 측백나무 숲이 무성하다. 족히 네 아름은 돼 보이는 측백나무를 현지 안내원이 안아 보고 있다. 둘레 2m 이상 된 나무는 진(秦)나라 때 심은 것이다.


촉도는 청두를 기점으로 방통묘(龐統廟)와 검문관(劍門關), 소화고성(昭化古城), 명월협(明月峽) 등 쓰촨(四川)성에 산재해 있는 각종 삼국지 유적을 하나로 잇는 길이다.

쓰촨성 정부는 수년 전부터 촉도 복원 사업에 착수했으며 내년부터 란마창도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개발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쯤 되니 쓰촨성 삼국지 유적 탐방의 큰 그림이 그려졌다. 쓰촨성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촉도 복원의 현장을 함께 하며 곳곳에 숨겨져 있는 삼국 문화의 향취에 젖어드는 것이다.

촉도 복원 사업이 완료되고 쓰촨성이 삼국지 유적 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게 되면 지역 경제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

2000년 전 중원 세력은 촉도를 통해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고 쓰촨 지역을 문명 세계로 편입시켰다.

이제 분지 속에 갇힌 채 세태 변화에 뒤쳐져 있던 과거 촉나라의 후예들이 스스로 길을 내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