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m 높이의 성곽의 한 부분을 뚫어 만든 지금의 정문을 지나 성 내부로 들어간뒤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고대 삼국시기의 출입문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성에는 대부분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 모두 네 개의 문을 냈지만 이 곳 신성에는 동성문(東城門) 동측문(東側門) 서성문(西城門) 3개의 문만 존재한다는 사실. 지금은 동측문도 사라지고 그 터에 동측문을 알리는 비석만이 쓸쓸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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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나가는 동성문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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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측문은 사라지고 그 터에는 이제 동측문이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는 비석이 있다. |
성 관리자는 “문이 많으면 들어오고 나가기는 편리할 테지만 그만큼 외부 침략의 위험성도 커지게 된다"며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문을 세 개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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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문과 서성문 사이의 '차마도'는 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
동성문과 서성문을 연결하는 길은 차마도(車馬道)로 성을 드나들던 주요 통로였다. 이 길 위에서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였을 수레와 마차, 말발굽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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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에게 병술을 가르치던 지휘대. |
정문을 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 높이로 조성된 단상이었다. 단상 앞으로 널찍한 공간이 마련된 점으로 미루어 병술을 지휘하고 익히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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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위나라 병사가 말에게 물을 주었던 못이라는 뜻으로 음마지라고 이름붙여졌다. |
단상 옆에 연못이 있었다. 왠 연못인가 싶어 안내판을 보니 ‘음마지(飮馬池)’로서 말에게 물을 먹이는 데 쓰인 일종의 말 우물과 같은 곳이었다. 이 곳 신성 터 발굴 당시 연못속에서 맷돌의 위 아래돌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발견돼 삼국지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사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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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마지에서 발견된 맷돌은 현재 공원 내 유물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다. |
공원 조성 시 출토된 유물과 신성의 역사를 설명해 놓은 ‘삼국문물진열관’을 지나면 무기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나온다. 이 곳에서 발견된 화살촉 등의 유물에 대해 고증을 한 결과 성안에서 무기를 직접 제작했음이 확인됐다. 지금은 무기제작용 가마가 있던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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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제작용 가마 터 옆에는 무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동상이 마련되어 있다. |
“삼국유적공원은 위나라 군사 운영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민초들의 생활상을 설명해주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상당수 문헌이 유비, 관우, 조조 세 사람의 활약에 초첨을 맞췄던데 비해 이 곳은 조조 사(死)후 삼국시대 중ㆍ후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안내원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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