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기행 17- 안후이성편> 1-2 살아있는 교과서 '삼국유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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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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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해연 기자) 1800여 년 전 삼국시기 위나라 최고의 군사요충지였던 신성(新城). 오랜 풍파와 문명의 진보 속에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많이 퇴색됐지만 병영(兵營)터와 무기 대장간, 지휘대 등이 역사의 편린으로 남아 세월의 영고성쇄를 들려주고 있었다.


20m 높이의 성곽의 한 부분을 뚫어 만든 지금의 정문을 지나 성 내부로 들어간뒤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고대 삼국시기의 출입문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성에는 대부분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 모두 네 개의 문을 냈지만 이 곳 신성에는 동성문(東城門) 동측문(東側門) 서성문(西城門) 3개의 문만 존재한다는 사실. 지금은 동측문도 사라지고 그 터에 동측문을 알리는 비석만이 쓸쓸하게 서있다.

동쪽으로 나가는 동성문의 모습.


동측문은 사라지고 그 터에는 이제 동측문이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는 비석이 있다.


성 관리자는 “문이 많으면 들어오고 나가기는 편리할 테지만 그만큼 외부 침략의 위험성도 커지게 된다"며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문을 세 개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동성문과 서성문 사이의 '차마도'는 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동성문과 서성문을 연결하는 길은 차마도(車馬道)로 성을 드나들던 주요 통로였다. 이 길 위에서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였을 수레와 마차, 말발굽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군사에게 병술을 가르치던 지휘대.


정문을 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 높이로 조성된 단상이었다. 단상 앞으로 널찍한 공간이 마련된 점으로 미루어 병술을 지휘하고 익히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위나라 병사가 말에게 물을 주었던 못이라는 뜻으로 음마지라고 이름붙여졌다.


단상 옆에 연못이 있었다. 왠 연못인가 싶어 안내판을 보니 ‘음마지(飮馬池)’로서 말에게 물을 먹이는 데 쓰인 일종의 말 우물과 같은 곳이었다. 이 곳 신성 터 발굴 당시 연못속에서 맷돌의 위 아래돌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발견돼 삼국지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사료가 되고 있다.

음마지에서 발견된 맷돌은 현재 공원 내 유물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다.


공원 조성 시 출토된 유물과 신성의 역사를 설명해 놓은 ‘삼국문물진열관’을 지나면 무기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나온다. 이 곳에서 발견된 화살촉 등의 유물에 대해 고증을 한 결과 성안에서 무기를 직접 제작했음이 확인됐다. 지금은 무기제작용 가마가 있던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무기제작용 가마 터 옆에는 무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동상이 마련되어 있다.


“삼국유적공원은 위나라 군사 운영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민초들의 생활상을 설명해주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상당수 문헌이 유비, 관우, 조조 세 사람의 활약에 초첨을 맞췄던데 비해 이 곳은 조조 사(死)후 삼국시대 중ㆍ후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안내원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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