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원자력발전소 고장 사태가 또 터졌다. 지난해 말 울진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3호기가 기기 오작동 등으로 가동을 멈춰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준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12일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이날 오전 월성 원전 1호기가 온도감지장치 오작동으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한때 전력예비율이 급감했다. 정부와 한수원 등이 비상대응에 나서 정전 등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한수원은 이번 사고에 대해 “원자력출력 100%, 터빈출력 694MWe로 정상 운전되다가 원자로 냉각재 펌프 4대 중 1대의 쓰러스트(축방향) 베어링에 고(高)온도 신호가 들어오면서 원자로 가동이 자동으로 멈췄다”고 밝혔다.
그러잖아도 한파가 몰아치면서 동계 전력난 커지고 있는 마당에 잇따른 원전 가동중단으로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기업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계에너지 절전 기간중 강제 10% 절전요구를 받아 온 산업체들로서는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전력 수급 문제 없나
잇따른 원전 가동사태로 동계 전력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47분 현재 전력예비율은 11.0%(최대 공급능력 7839만㎾)로 두 자릿수를 회복했지만, 한파가 계속되고 있어 여전히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예비전력량은 400만㎾ 밑으로 떨어질 경우 비상상황으로 보는데 현재는 600만㎾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보통 원전 1기당 전력생산량은 100만㎾이지만 월성 원전은 건설된 지 오래돼 전력생산량이 67만9000㎾에 불과해 가동 중단으로 인한 여파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계획예방정비 등으로 가동이 멈춰있는 울진 4호기(발전용량 100만㎾)와 신고리 1호기(발전용량 100만㎾)가 각각 4월 23일과 2월 16일께나 발전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돼 전력당국은 비상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력피크를 가장 크게 염려해야 하는 시기인 1월 중순을 발전용량 267만9000㎾ 없이 지내야 할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지경부와 전력당국은 이날 전력수급에 비상을 걸고 수요관리를 통해 가능한면 예비력을 500만㎾ 이상 유지할 계획이다.
사전 계약을 맺은 대규모 산업체의 긴급감축을 위한 수요관리시장 개설로 이날 하루 최대 110만㎾ 용량을 확보하고 절전 규제로 최대 300만㎾ 예비력을 추가한다는 복안이다.
현재 KCC 등 500개 업체가 1년중 전력소모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주와 다음주에 20% 이상 절전하고 있다. 평시에는 5%만 감축하고 이 기간 다른 업체에 비해 절전 비율을 높인 것이다. 또 GS칼텍스 등 비상발전기 보유업체들은 비상발전기 가동을 확대하고 주물업체들은 순번 휴무에 나서고 있다고 지경부는 전했다.
◆ 원전 고장…노후화·비리복마전 ‘원인’
국내 원전은 총 21기가 가동중에 있다. 이들 원전은 국내 전체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계획정비에도 어려움이 있다.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있는 신고리 1호기를 제외하고 고리원전 1호기부터 4호기까지 총 338만6000㎾의 발전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영광원전은 1호기부터 6호기까지 총 발전용량이 622만7000㎾, 월성원전 1~4호기가 218만1000㎾, 울진원전은 현재 계획예방정비로 가동이 중단돼 있는 4호기를 제외하고 1호기부터 6호기까지 515만9000㎾의 출력을 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원전이 잇따라 고장사고를 일으키면서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 국내 원전 중 8기가 30년 이상된 노후원전이고,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 가동한 지 벌써 43년이 지났을 정도다.
지난해 9월 주민들이 설계수명(30년)을 넘긴 고리 1호기의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기각됐다. 그럼에도 고리1호기는 여전히 수명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각각 발전용량 950MWe인 울진원전 1, 2호기 상업 운전일도 각각 33년과 32년에 달할 정도로 노후화 돼 있다. 1999년말부터 가동을 시작해 비교적 신규 설비로 분류되는 울진4호기는 처음에는 단순한 계획예방정비 차원에서 가동을 중지했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심각한 설비상의 문제가 발견됐다.
최근 한달 사이 3번의 원전 가동중단 사태가 빚어진 것도 일부 작업자의 단순 착오를 제외하고라도 무리한 가동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크다.
12일 고장으로 발전이 중단된 월성 원전 1호기도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다. 올해 11월로 설계수명이 끝난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의 10년 연장 운전을 위해 2009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월성 1호기는 27개월여 간 7000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설비개선 작업을 마치고 작년 7월 재가동에 들어갔으나 이번에 문제가 발생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27개월이나 정비를 하고도 고장이 발생한 것은 각종 부품이 더 이상 제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앞으로 계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고리원전 1호기와 2호기의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원전부품의 설계도면이 빼돌려지거나, 심지어 3,4호기는 불량제품이 신제품인 것처럼 속여서 납품되는 사례가 적발되는 등 원전고장에 불법비리도 한 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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