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는 손권(孫權)의 장수인 여몽(呂蒙)이 맥(麥)성으로 후퇴하는 관우(關羽)를 반마색을 이용해 사로잡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손책(孫策)이 태사자(太史慈)를 사로잡을 때도 반마색이 이용됐다. 제갈량의 칠종팔금(七縱八擒)에서 마대(馬岱)가 맹획(孟獲)의 부인인 축융(祝融)부인을 사로잡은 무기도 반마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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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장번산씨가 반마색이라고 쓰여진 천을 걷어 그 안에 있는 반마색을 쳐다보고 있다. |
우리 취재팀은 여포성 인근 길가의 한 민가에서 빨간바탕의 플래카드에 노란색 글씨로 반마색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문을 여러 차례 두드리자 민가에서 한 노파가 나와서 취재팀을 맞았다.
정향(鄭香)라는 이름의 노파는 “삼국지 반마색을 보러 오셨군요. 2층 옥상으로 올라가면 반마색을 볼 수 있어요”라며 반겼다. 옥상에 올라가 반마색이라고 써져 있는 플래카드를 젖히자 그 안에 다소 얇아보이는 쇠사슬이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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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마색이 발견된 민가의 입구에는 반마색에 대한 설명이 적힌 인쇄물이 걸려 있었다. |
쇠사슬에 녹이 슬어있지 않았고 만져보니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18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보존상태가 무척 양호했다. 반마색을 발견한 것은 이 노파의 남편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 곳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쇠사슬이 나왔으며, 보통 쇠사슬보다 얇고 생긴 것도 특이해 이상하게 여긴 발견자는 이를 가져다 시정부 당국에 조사를 의뢰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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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납작한 반마색의 가까운 모습. 이 반마색은 1800년전 여포가 18제후군의 공격을 대비해 매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함께 동행했던 싱양(滎陽)시 여유국 부부장 왕융장(王永江)은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이 쇠사슬은 1800년 가량 전에 만들어졌음이 판명됐다”면서 “1800년전 이곳은 여포와 18제후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현장”이라고 소개했다. 왕 부부장은 또한 “이 쇠사슬을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보여줬더니 이들 모두가 현재 문서로 전해지는 후한시대, 삼국시대의 무기모습과 똑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 장번산(張本善)은 "여포가 18제후군을 맞아 여포성으로 내달려올 적군에 대비해 바로 이 곳에 반마색을 묻어뒀다"며 "1800년이 지난 후 이 자리에서 반마색이 발견된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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