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아이러니다. 한껏 예뻐 보이려고 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온몸을 던져 망가지니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자다가 눌려 심하게 뻗친 머리, 대충 찍어 바른 화장, 엉거주춤 걸친 옷, 우당탕탕 남자들과의 격한 육박전….
어느 한 장면 예쁘게 치장하기는커녕 ‘여배우로서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망가지지만 그는 매 장면 ‘이보다 예쁠 수가 없다’.
이시영(30). 그가 KBS 2TV 수목극 ‘난폭한 로맨스’(극본 박연선, 연출 배경수)의 ‘유은재’로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사실은 더 웃기려고 해도 감독님이 많이 말리세요. ‘그래도 여주인공인데’ 싶은거죠.(웃음) 하지만 저랑 (이)동욱이 오빠는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스태프를 더 웃길까 그 생각만 해요. 현장 스태프가 웃어주면 힘이 나서 코미디가 더 잘되거든요.”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너무너무 재미있다. 망가져서 창피한 건 하나도 없다”며 “캐릭터가 워낙 좋아서 다들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다”며 밝게 말했다.
선머슴 같은 여자 경호원 유은재를 위해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쇼트커트를 했고 그 머리를 십분 이용해 현실적인 코미디를 펼쳐보인다.
“사실 이 머리가 제 어린 시절 머리예요. 어렸을 때 시골(충북 청원)에서 자랐는데 그때 머리가 딱 이랬어요. 할머니가 머리 위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가위로 쭉 잘라준 머리죠. 어떤 헤어스타일을 선보일까 고민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지금도 그 사진을 대본 앞에 붙여놓고 연기하고 있어요.(웃음)”잠자리에 드는 신에서도 립스틱까지 곱게 칠하고 연기하는 게 여배우들이다. 그런데 이시영은 이번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세수하는 신에서도 ‘벅벅’ 철저하게 씻는다. 그중 압권은 아침에 자다 일어난 유은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위해 개그프로에나 나올 법한 뻗친 머리를 일부러 드라이해 선보이는 것이다.
“감독님이 처음에 반대하셨는데 제가 너무 하고 싶다고 해서 막 졸랐어요.(웃음) 결국 그래서 뻗친 머리를 일본 촬영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폭소가 터졌죠. 그런데 제가 봐도 ‘너무 심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에는 감독님의 의견을 수용해 뻗친 머리를 좀 죽였어요.”이시영의 코믹 연기는 2010년 ‘부자의 탄생’의 ‘부태희’에 뿌리를 둔다. 그전까지는 수많은 신인 여배우 중 한 명에 머물던 그는 ‘부태희’를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하무인에 무식하고 칠칠치 못하며 푼수 같은 재벌 2세 아가씨 부태희는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과시하며 큰 웃음을 줬다.
하마터면 안방극장에 흔하디흔한 재벌남의 불륜녀 역할에 머물 뻔했던 이시영은 이 역할로 자신을 구제하며 코미디에 재능이 있음을 과시했다.
이후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부산 사투리를 맛있게 구사하는 아가씨로 분해 웃음을 준 여세를 몰아 ‘난폭한 로맨스’에서 또다시 새로운 코미디를 선보이며 이름값을 높인다. 더불어 그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 역시 쑥쑥 성장했다. 무엇보다 여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는 게 고무적이다.
“감사할 따름이죠. 원래부터 박연선 작가님의 팬이었는데 이번에도 유은재라는 인물을 너무 잘 그려주셨어요. 대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찍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작가님,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해 참 즐거워요. 또 이번에 선배님들의 권유로 유은재의 시각에서 일기를 써 보는데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요. 처음엔 그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연기하면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들을 글로 정리해 보니 감정이입이 더 잘돼요.”코미디에 더해 그가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복싱 덕분이다. 169㎝ 호리호리한 미녀가 복싱에 빠졌고 결국 2011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48㎏급)에서 우승까지 한 실제 스토리는 큰 관심을 모았다. 이시영은 복싱으로 건강함과 정직한 땀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그가 우승 후 터뜨린 울음은 여배우를 보호하는 ‘가식’의 장막을 걷어냈다.
“예쁜 배우는 너무 많잖아요. 그건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모만으로 승부하려는 것은 욕심 같았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복싱을 접하게 되면서 다른 쪽으로 다가서 보자 싶었죠.”그는 “복싱은 내게 또 다른 꿈이다. 결코 가볍게 생각하거나 그저 취미 생활로 여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복싱으로 인해 캐스팅도 더 잘되고 이미지도 좋아졌지만 가장 행복했던 것은 서른 즈음의 내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제 가장 간절한 꿈은 연기이지만 그건 어찌 보면 맹목적일 수도 있고 잘 안 될 경우는 좌절감도 크잖아요. 그러던 중 복싱을 만났는데 잘하고 싶은 게 또 생겼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그는 “복싱은 내게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의미”라며 “복싱을 하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인간 이시영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사실 운동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겨요. 살을 찌워 체급을 좀 높이면 훨씬 더 힘있는 펀치가 나올 것 같은데 여배우로서 그건 참고 있어요.(웃음)”복싱을 한 후 ‘포세이돈’의 해경 경장을 거쳐 이번에는 경호원을 맡게 된 이시영에게 동료 남자 배우들은 “여배우 중 액션에서 최고”라며 입을 모은다.
“액션이든 코미디든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많고 아직은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둘 다 정말 잘하고 싶고 거기에 여자로서의 사랑스러움을 더해 더 멋진 로맨틱 코미디를 선사하고도 싶어요.”이시영은 2008년 남들보다 늦은 스물여섯에 데뷔했다.
“TV를 처음 본 게 아홉 살 때 서울에 와서였어요. 그전까지 시골에 살면서 TV를 볼 수 없었거든요. 제게 TV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고 ‘나도 저기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대학 졸업 후 도전하니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지면서 잘 안됐어요.”그러다 스물여섯에 케이블 드라마로 데뷔해 여기까지 온 그는 지금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쉬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진심으로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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