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AI 투자 '인비저블 리스크' …2026년 경제의 장부 밖 함정

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하루만을 남겨둔 2025년은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질서의 일탈을 수습하고, 흔들렸던 민주주의와 경제 질서를 다시 제자리에 세우는 한 해였다.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발전 경로를 모색해야 하는 출발선 앞에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미국은 자국 중심의 제조업 생태계 재구축을 본격화했고, 광범위한 관세 부과로 자유무역 질서는 또 다른 전환점에 들어섰다. 세계 경제의 향방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졌고, 그 파장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과거의 이념적 구분을 넘어서 AI 국가 전략을 중심으로 실용적 국익 추구라는 방향을 설정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인공지능은 특정 산업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제조·금융·의료·국방을 아우르는 범용 기술로서 산업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게임 체인저다. 국가 전략의 중심에 AI를 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AI 국가 전략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 ‘AI 국부펀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다. 국민 자금을 투입해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펀드인 만큼, 투자 회수까지 걸리는 기간, 민간과 공공 간 손익 배분 구조, 실패 사례 발생 시 책임의 범위와 처리 방식 등 구체적인 설계가 투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단기 성과 위주로 설계된 기존 정부 R&D 사업이나 공공펀드 평가 체계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투자 실패에 대한 과도한 문책이 장기 투자를 위축시키지는 않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장기 전략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전략 산업에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면서, 정권 변화에 따라 정책 기조가 흔들린다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초당적 지원과 동시에 견제 장치가 함께 작동하는 안정적 추진 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사전 정지 작업 없이 거대 펀드 조성부터 서두른다면, ‘국민의 돈으로 한몫을 노린다’는 오해와 정치적 논란만 키울 위험이 있다. 대전환의 비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행 단계의 치밀함이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오래된 격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상장사의 독립적 이사회가 주주 가치를 지키듯, 국부펀드 역시 ‘국민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거버넌스 기준을 갖추는 것이 2026년을 앞둔 우리의 핵심 과제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2026년 우리 경제 앞에 놓인 리스크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 예견된 위험은 관리할 수 있지만, 구조적 위험을 외면한 채 낙관에 기대면 그 충격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리스크는 AI 투자 열풍이 내포한 버블 가능성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기업들은 AI 모델 학습을 위한 데이터센터 증설과 전력 인프라 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엔비디아의 GPU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졌고,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AI 서버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붐이 안정적인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최근 미국 오라클의 사례는 이런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라클은 오픈AI와 협력해 미시간주에 1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했지만, 핵심 투자자와의 협상이 결렬되며 1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었다. AI 사업의 불확실성이 부각되자 오라클 주가는 단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했고, 이는 AI 투자 열풍 이면에 존재하는 거품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물론 혁신 기술 도입 초기의 버블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왔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역시 수많은 실패를 남겼지만,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했다. 어떤 기술과 사업 모델이 살아남을지는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다수의 실패를 감수하는 과정 속에서만 성공이 선별된다. AI 분야도 다르지 않다. 버블을 이유로 투자를 회피한다면 미래 성장의 기회 역시 놓치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성공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데 있다. 투자는 시장의 영역이고, 정부는 혁신이 작동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

두 번째 리스크는 은행의 신용평가 체계 밖에서 급속히 성장한 사모크레딧(private credit) 시장에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대출은 은행 외부로 이동했고, 그 빈자리를 사모펀드들이 채웠다. 그 결과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은 지난 10여 년 사이 급격히 팽창했다. 은행이 사모펀드에 대출을 제공하거나 대출자산을 유동화하면서, 일반 금융소비자 역시 간접적으로 이 시장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 자산의 평가와 공시가 구조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사모크레딧 자산은 공개 시장에서 실시간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장부상 평가(Mark-to-Model)에 의존한다. 데이터센터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수익성이 악화되더라도 위험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최근 AI 인프라 투자 과정에서 사모펀드들은 지분 투자뿐 아니라 중순위 대출, 메자닌 등 다양한 형태의 사모크레딧 자금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위험이 뒤로 미뤄진 ‘회계적 착시’에 불과하다. 투자 회수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AI 수익 모델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누적된 부실은 한계점에 도달해 급격히 표면화될 수 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지적했듯, 시가 평가가 결여된 자산은 변동성을 낮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응축해 두었다가 특정 시점에 급락하는 ‘절벽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AI 국부펀드 운용에서 이 두 가지 리스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부펀드의 투자 대상에는 상장기업뿐 아니라 비상장 초기 기업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버블을 이유로 투자를 회피하면 성과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은행 신용평가 체계 밖에서 형성되는 대출과 레버리지 구조, 자산 가치 평가 방식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전, 실물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투자에 대한 대출이 장부가로 유지되다가 한순간에 붕괴하며 위기로 이어졌던 경험을 겪었다. IMF 위기 이전에 실물부문의 수익성 없는 투자에 대한 대출(상업은행의 대출자산)이 시가평가되지 않고 장부가로 기재되었다. 그런데 이 사업의 부실이 알려져 절벽효과가 발생하여 위기로 이어진 것이었다.

최근 제기되는 AI 버블과 사모크레딧 시장의 장부 외 리스크는 이러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특수목적법인(SPV)을 활용해 대규모 AI 투자 부채를 재무제표 밖에 두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SPV를 통한 자금 조달은 공식 부채로 잡히지 않아 단기적으로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있지만, 위험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오라클은 이러한 장부 외 부채 규모가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지목된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도 중요한 리스크 요인이다. 2025년 들어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 장기금리가 동시에 상승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과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규모 재정 지출에 대한 불안으로 장기 국채 금리가 수십년 만의 고점을 기록했다. 재정 건전성은 다시 거시경제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중장기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양호한 국가신용등급과 대외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제도 정비의 적기다.

2026년 우리 경제는 오랜만에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불가피한 AI투자 확대와 그 프로세스와 평가체계의 재정비, 은행 신용평가체계 밖에 이루어지는 장부가 사모크레딧 부문 자산에 대한 평가, 글로벌 금리 상승과 재정여력 축소 등 여러 리스크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이들 위험을 미리 식별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동시에 미래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발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면밀한 모니터링과 선제 대응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그림자금융 영역의 동향까지 주시하며 거시건전성 관리 수단을 적기에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금융기술 도입은 환영하되 그에 수반하는 위험을 충분히 연구해 규제와 혁신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편으로 민간의 왕성한 혁신 노력을 뒷받침하되, 공공지출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은 확고히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시경제 운영의 큰 방향(방향 설정)과 미시 정책 설계(디테일)의 두 축 모두에서 전문성과 일관성이 요구된다. 다가오는 어려움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지난해 겪은 혼란을 딛고 배운 교훈 위에서 한층 성숙해져야 한다. 2026년의 대한민국 경제가 직면한 풍랑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면, 단기 처방과 중장기 구조개혁을 병행하는 입체적 전략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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