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설날의 의미는 최고령인 어르신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여 안부를 살피고 유대를 강화하는 데 있다. 보통 조부모, 부모, 자녀로 구성된 3세대가 모이지만 일부는 증조부모가 포함된 4세대가 모여 다복함을 자랑한다. 고전에는 장수 집안으로 당(唐) 고종 시절 장공예 집안의 9대 동거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황제가 그에게 9대 동거의 비결을 묻자 참을 인(忍)자 100개를 써서 바쳤다는 고사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 장수 집안으로 5대 가족이나 웃 4대·아래 4대 집안이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대가족을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해볼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백세인을 찾다가 백년 넘게 살아온 생애사를 들으면서 가슴이 메이거나 감탄하기도 하지만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을 찾게 되면 감동의 폭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우리나라 최고령 장수인을 찾아 헤매던 과정에서 만난 백세인 몇 분은 잊을 수가 없다. 진안군 백운면의 윤정안님은 갑오경장 직후에 태어나서 당시 108세셨다. 함께 사는 큰아드님 부부도 모두 아흔 살을 넘겼고 쉰이 넘은 손자 내외와 살고 있었다. 큰아드님은 낡은 대학노트를 꺼내 와서 꼬박꼬박 적어 놓은 가계도를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200명 넘는 직계가족이 기재되어 있었다. 한 부부 아래에 그렇게 엄청난 대가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6남매를 두셨고 이들이 각각 7남매, 8남매씩 두어 기하급수로 번창하여 5대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할머니가 육십이 되었을 때 작고한 할아버지의 관을 짜면서 마침 좋은 목재가 남아 있어 할머니 장례 때도 사용하려고 미리 관(棺)을 짜두었는데 30년이 지나자 목관이 썩어버려 자식들이 석관을 짜서 마당에 두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장수의 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곡성군 봉현마을에서 만난 백세인 공말례 할머니도 놀라운 가족관계를 보여주었다. 아흔다섯 살, 아흔세 살, 아흔 살된 남동생 삼형제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누나인 백세인 할머니는 매일 동생들 집을 돌아다니며 살피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백세가 되셨어도 형제들과 가족을 챙기고 다니실 만큼 건강하셨다. 할머니의 부모도 모두 구십수를 누렸으며 할머니는 고손자를 보았기 때문에 전형적인 5대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5대 가족을 만나게 되면 마치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들어간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성별로 보면 1세대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2세대부터는 남녀 비율이 비슷하였다. 이들 5대 가족의 핵심적 특징은 화목이었다. 대가족임에도 불구하고 42%는 1년에 5회이상 전 가족 모임이 있으며 어떤 가족은 거의 매주 가족들이 모이기도 하였다. 이들 집안의 공통적 장수 비결로는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생활’ ‘낙천적인 성격’ ‘장수 집안 내력’ ‘자연친화적 환경’ ‘적당한 운동’ 등이 수렴되었다. 건강 측면에서 1세대 전원이 암이나 고혈압, 당뇨병 등 질병이 없었으며, 54%는 거동이 자유로웠으며 1세대는 85%가 현재 술을 마시지 않고 있어 가족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후손인 자식들의 1·2세대에 대한 인식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현재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 “나의 뿌리, 살아 계신 것만으로 의지가 된다” “엄마라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데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까지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가” 등으로 매우 긍정적이었다. 축하 행사에서 이들 중 1세대 나이가 108세로 최고령인 공말례님과 102세인 김성희님 가족에게는 ‘뿌리 깊은 가족상’, 자손이 143명에 이르는 유주손님과 107명인 박봉순님 가족에게는 ‘풍성한 가족상’, 또한 1세대와 2세대 모두 거동이 자유롭고 5대 직계 모두 현재 병력이 없는 김찬호님과 윤금님 가족에게는 ‘튼튼한 가족상’이, 1세대에서 4세대까지 모든 부부가 생존해 있는 황치정님 가족에게는 ‘백년해로 가족상’을 수여하여 축하하였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도 5대 가족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장수 집안 가족구성원으로 태어나서 증조부모를 만나야 하고 죽기 전에 증손자녀를 보는 웃 4대·아래 4대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온 집안을 주로 지칭하였다. 백세인 조사 과정에서 이런 집안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대대로 장수한다는 사실은 가족뿐 아니라 그 구성원인 개개인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유전체 분석에서 보다 장수유전자의 발견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큰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전통적 장수 집안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한 세대의 기준은 보통 20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대의 길이가 점차 늘어나서 30년을 한 세대로 보고 있다. 여성들의 초혼 연령이 1970년대 23.5세, 1990년대 24.7세, 2000년 27.1세, 2010년 29.1세, 2020년 30.8세로 높아지고 있기 떄문이다. 참고로 5대 가족 평균 연령을 세대별로 살펴보면 1세대 94.3세, 2세대 73.5세, 3세대 51.2세, 4세대 28.5세, 5세대 2.0세로 나타나 세대가 이어지면서 세대 간 연령 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5대 가족은 대부분 20대 초반 전후에 첫 출산을 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근자에 들어 결혼 자체도 줄어들 뿐 아니라 초혼이 늦어지고 출산 연령마저 늦어지는 사회풍조가 만연하면서 다세대로 구성된 장수가족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웃 4대·아래 4대 가족 또는 5대 가족과 같은 전통적 장수 집안은 점차 소멸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비록 개인의 수명이 증가하여 장수인은 증가하지만 대를 이어 장수하는 집안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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