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 톡톡> 구순맞은 신사실파 마지막 생존화가 백영수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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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3-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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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백 출연 영화 '가면과 거울' 상영..고독한 화가 인생' '미술+영화' 만남 감동 두배

 
3일 의정부 백영수화백 작업실에서 백화백 구순잔치가 열렸다. 작업실 마당에는 백화백인 1973년  도봉산에서 가져와 심은  '아기 소나무'가 아름드리 나무가 됐다./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신사실파' 살아있는 전설 백영수화백이 지난 1일 구순을 맞았습니다.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규상화백과 함께 1947년대 결성한 국내 신사실파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있는 화가죠.

해방 직후 전쟁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됐던 혼란의 시기에도‘순수 조형미술을 하겠다’며 이들 6명은 '가난한 환쟁이' 절친이 됩니다. 낡은 '사실'을 버리고 추상기법을 도입해서 시대를 꿰뚫자며 모임을 만들었고 이후 이들은 국내미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제는 '역사가 된 사람들'과 달리 백영수화백은 이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971년 파리로 날아가 재불화가로 살아온 백화백은 지난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34년만이죠. 백화백을 인천공항에서 만났을때 백화백이 비행기에서 그렸다는 그림을 보는 순간 빵 터졌습니다.

30년만에 파리에서 귀국하면서 비행기에서 연필로 그린 그림.

엄마등에 업혀있는 아이같은 얼굴을 보니, 입가에 수염이 자랐습니다. 백화백은 그림 속 아이어른을 가리키며 "이게 나야"라며 슥 웃더군요.

떠돌던 청춘, 백화백의 그림속 인물은 얼굴을 가로로 (모로)돌린채 아련한 애수가 흐릅니다. 엄마등에 업혀있거나, 쪼그려앉은 아이인듯한 얼굴은 백화백을 닮았습니다.

'그리움이 그림'이라고 했던가요. 백화백은 작업실은 물론, 카페안에서나, 앉아있는 곳 어디서나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립니다.

항상 주머니만한 빈노트와 색연필을 꺼내 슥슥슥 그리움을 그려냅니다. 

백화백 그림이 담긴 케익.

파리로 가기전 살았던 의정부 작은집에 '컴백 홈'한 백화백은 한국에서 지난 1년을 새롭게 맞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백화백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자주 마주합니다. 지난해 12월 초 '절친'이던 권옥연화백을 떠나보냈습니다.

저무는 삶속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텅빈 심연을 응시하는 듯한 백화백의 시선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백영수화백과 민병훈감독(오른쪽). 민감독은 백영수화백을 주인공으로 '가면과 거울'을 타이틀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 3일 오후 3시 백화백의 구순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미술계 원로들과 지인들 50여명이 참석한 자리는 손재주 많고 철학적인 백화백의 내면을 엿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백화백이 출연한 영화를 백화백의 아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영화를 만든 민병훈감독은 2년전 백화백이 거주하던 파리에서 그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영화는 민 감독의 자작시 '가면과 거울'을 모태로 만든 시(詩)로 만든 영상입니다. 민감독은 이 영화를 칸느에 출품한다고 합니다.

 이날 선보인 영화는 백화백의 구순잔치에 열려 '백년의 고독'보다 더한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사했습니다. 노인의 고독과, 예술가의 고독을 직접 느껴볼 수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죠. 

3일 의정부 백영수화백 작업실에서 백화백이 출연한 영화 '가면과 거울'이 상영됐다.
얼굴을 비비고 일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한 노인(백화백)이 거울을 한참이나 쳐다보며 내뱉은 말은 "너무 늙었네"입니다.

카메라는 노인의 등뒤를 따라다닙니다. 

백화백(노인)은 이곳저곳, 예전에 다녔던 곳을 다시 걸어다닙니다. 숲속에서 만난 주름이 패이듯 갈라진 나무둥치를 만져보기도 하고, 아직도 힘차게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또 그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 친구들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동네어귀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 친구들이 이곳에 있다며 공동묘지로 안내합니다.

비석에 이름을 달고 한쪽에 모여있는 묘지안에서 그가 또 한마디를 읇조립니다. " 다 죽었네. 다 죽었어"

백 화백의 모습은 그 존재만으로 그대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보여줍니다. 노인의 얼굴속에 기억과 추억이 버무려진 회한이 가득합니다.

대사없는 영화입니다. 소리가 없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침묵이 내장된 슬픔'과 '비장한 아름다움'이 전면에 흐릅니다. 꽃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백 화백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마치 삶인가 싶은데 죽음같기도 하고,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라는 유명한 호접몽(蝴蝶夢)을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텅빈 공허…. 차갑게 다듬어내 모두의 가슴을 시린 허공처럼 만들어버린 소설처럼 백 화백의 구순잔치는 순간, 고독속에서 마주쳐야할 죽음의 공포와 '인생 무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백 화백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미술과 영화의 만남'과 압축된 화가의 모습에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원로화백들의 모습을 상업영화가 아닌 이처럼 예술영화로 '화가시리즈'를 만나봤으면 한다는 바람도 보였고, 고독한 화가의 일생, 예술가의 존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이어서 이런 기회가 자주있었으면 한다는 의견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도 100세 장수시대에 돌입했습니다. 농촌에서 칠순은 아직도 아랫목에 못앉는다고 하죠.

이제 구순을 맞은 백화백도 건강합니다. "아직도 그림그리는게 자유의 세계"라며 붓질을 멈추지 않고 있고, 여전히 생각은 청춘입니다.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귀국하던 비행기에서 조그만 종이에 그렸던 그림을 
화폭에 옮겼다. 1977-2011.

외로움과 그리움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큰 힘인 듯 합니다.

"저걸 새로 그렸어" 라며 그림을 보여주시는 백 화백은 "한달에 한번은 봐야지 너무했어"라며 눈을 흘기며 잡은 손을 꼭 잡고 한참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마음의 찌꺼기도 없는 눈빛입니다. 어른이면서 아이같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던가요.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는  알랭드 보통의 말이 아니더라도, 구순까지 '화생화사'(그림위해 살고 그림위해 죽는)한 순수해지는 백화백의 그림을 보며 느꼈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모두 일상의 관심에서 발견한 기쁨과 애정이라는 것을....

 '관심의 부싯돌'을 켜두시길.  예술은 거창한게 아닙니다. 결핍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얻는 사소한 기쁨을 누리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백영수화백이 작업실 마당 벽에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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