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DJ'로 불렸던 한화갑 전 대표가 그랬고, 잠재적인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김민석 전 최고위원도 정치인으로서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좌초했다. 지난해 말 작고한 '민주화의 상징' 김근태 상임고문과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김혁규 전 의원도 빛을 보지 못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진보는 '분열' 때문에 망한다. 보수여당은 하나의 '대망론'에 의해 똘똘 뭉쳐 움직이는 반면 진보야권은 서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들끓어 자멸하기 일쑤다.
이 같은 차원에서 봤을 때 민주통합당 정세균 상임고문은 야권의 여타 대선주자들에게는 없는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오랜 기간 정치적 중립지대에서 활동하며 당내 여러 계파를 아우를 수 있고, 창당 이래 최대 위기상황에서 대표를 맡아 마찰을 무마시킨 경험도 있다. 그의 20년 동안의 정치 경험은 대선주자로서 그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하다.
◆ '균형감각' 갖춘 '계파통합' 리더십
정 상임고문의 능력과 인지도는 정치권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내에서는 모두 그의 조정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념적으로는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는 한편, 계파적으로는 당내 갈등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친노와 구민주계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민주당 진안ㆍ무주ㆍ장수지구당 위원장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 정 상임고문은 본인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항상 중립지대에서 활동하며 당내 계파간 갈등관계를 조정해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를 맡던 시절엔 총재 특보를, 2003년 열린우리당 시절엔 당 정책위 의장을 맡는 등 요직을 거치면서도 특정 계파에 편승하지 않아 정적(政敵)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완패하며 민주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던 지난 2008년, 당대표에 올라 당내 계파별 상호 책임론과 분열을 최소화하는 한편, 거대 여당에 맞서 투쟁을 벌인 점은 지금도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
이처럼 정 상임고문이 계파색이 옅으면서도 당의 요직을 거쳤고, 화합을 끌어냈다는 것은 그만큼 당내에서 신망이 높고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당내 정치지형도를 봤을 때 정 상임고문은 동교동계의 막내로서 호남과 구민주계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고, 노무현 정치세력의 결집을 자신의 대선 세력으로 포용할 수도 있다. 이는 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이기도 하다.
안철수 효과와 문재인·김두관의 등장으로 상황이 많이 바뀌긴 했으나, 호남·동교동·친노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지킬 수 있는 대선주자는 정세균 상임고문이 유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학생운동·기업·행정·정치 경험 통한 '중도층'의 안정적 지지
정 상임고문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보수의 아이콘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진보 인사에게 한 번도 자리를 허락한 적이 없는 종로가 왜 정세균 상임고문을 받아들였을까. 여기에서 대선주자로서 정 상임고문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일단 정치권 안팎에선 정 상임고문을 두고 '야당 같지 않은 야당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한다. 통상 진보 정치인은 이념과 투쟁을 근간으로 한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반면, 정 상임고문은 중도적 진보를 표방하며 합리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시절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투쟁을 벌인 바 있는 정 상임고문은 졸업 후 쌍용에 입사해 상무이사에 오른 뒤 정계에 입문했다.
정계 진출 뒤 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에서 원내 수석부총무·정책위의장 등을 거치며 정책 입법 경험을 쌓았고, 참여정부 시절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으며 국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의 이념투쟁 노선을 경험했고, 회사원·정치인·행정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중도층으로부터 '무리가 없는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가 회사원 때부터 장학회를 운영하는 등 평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점은 이념적 성향을 떠나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동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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