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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로컬 룰’이 횡행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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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5-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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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문화레저부 부국장겸 골프전문기자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골프규칙에 ‘로컬 룰’이 있다. 본 규칙에서 규정하지 못한 내용이나 특수한 상황을 부록 형식으로 따로 붙여 설명해 놓은 것이다.

각 골프장도 로컬 룰을 정해 스코어 카드 뒷면에 명시해놓는다. 친 볼이 화단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고, OB(아웃 오브 바운즈: 코스밖)로 날아가면 어떻게 하며, 연못에 빠질 경우 ‘드롭 존’에서 친다는 것 등이 그런 예다.

골프장에 따라 로컬 룰이 많은 곳이 있는가 하면, 몇 가지 안되는 곳도 있다. 기자는 로컬 룰이 많은 골프장일수록 ‘후진(後進) 골프장’으로 본다. 모든 상황을 원칙대로 처리하면 될 것을, 뭔가 부족한 탓에 세부 규정을 두어 골퍼들을 제어하려는 뜻으로 해석되는 까닭이다.

로컬 룰은 일종의 예외 규정이다. 골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예외가 많으면 본령이 훼손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곳곳이 로컬 룰 투성이이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이해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다. 로컬 룰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도 버젓이 로컬 룰을 두어 원칙 위에 선다.

예컨대 고관이나 외교관이 ‘행차’할 때 일반시민의 불편엔 아랑곳하지 않고 신호등을 조작하는 일, 명절같은 때 고속도로 갓길을 보란듯이 가는 차량이 있어도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아 법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일, 취지는 외국어를 잘 하는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지만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곳으로 전락한 외국어고, 기량이 출중한 운동선수에게는 학업(학점)을 면제해주다시피하는 학교 체육 실상 등….

한 민족이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문제도 그렇다. 말은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최근 개정된 표준어법은 이해하기 힘들다. 볼 거리, 입을 거리, 마실 거리, 살 거리 등에서 유추해서 그랬을까. ‘먹을 거리’라고 해야 어법에 맞는데도 ‘먹거리’도 표준말로 포함했다. 원칙을 어겨가며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엄청나게’와 더불어 ‘엄청’이 표준어가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북쪽 동포들이 “먹거리가 뭐냐, 엄청은 무슨 뜻이냐”라고 하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흉노열전’은 사마천의 명작 ‘사기’ 중에서도 명편으로 손꼽힌다. 사마천은 흉노의 지도자 묵돌이 혁명에 성공한 이유로 ‘예외를 만들면 위험하다’는, 그의 강인한 리더십을 들었다. 요컨대 한 번 원칙을 정하면 그에 따르면 될 뿐, 어떤 예외가 있어서는 안됐다. 머뭇거리거나 우유부단한 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한 것은 혁명이라는 작업에 약한 인간의 마음이 배어들어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 그랬다.

중국 인구의 14분의 1밖에 안되는 흉노였으나 이같은 강한 조직력과 사회구조 및 습속 덕분에 중원의 힘이 약해지거나 내분이 있을 때마다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으로 쳐들어와 정권을 세웠고 중국을 정복하여 다스리기도 했다. 흉노열전에 배어있는 단순성의 가치는 몇 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컬 룰이 필요없는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접받고 원칙이 존중받는 사회가 선진 사회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로컬 룰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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