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총선 공약 이행과 사회적 복지수요 충당을 위해 적정 수준의 재정편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데 비해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정치권 인사들과 정부 고위관료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4일 열린 국회 국가재정연구포럼 창립총회 및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격한 토론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재정문제를 두고 서로 입장차를 드러내며 당·정 간 긴장관계를 재확인했다.
공세는 황우여 대표가 먼저 취했다.
황 대표는 이날 창립 축사에서 “돈은 한편에선 아껴야 하겠지만 어떻게 쓰느냐도 관건이다. 우리(정치인)도 살림살이 할 수 있도록 대안 잘 마련해 달라”고 운을 뗀 뒤 “꼭 박재완 장관이 들으라고 한 얘기는 아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돈을 아껴야 하는 것은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재정부를 지칭하고, 돈을 써야하는 것은 정치권을 뜻하는 것이다.
전날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이 영·유아 무상보육 지원 등을 두고 보육지원 체계를 손볼 뜻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새누리당과 충돌한 것을 두고 황 대표가 박 장관에게 직접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박 장관은 경제성장률 제고와 복지확충을 위해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박 장관은 축사에서 논어의 ‘행불유경(行不由徑)’이란 경구를 인용, “지름길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우리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길을 가는 것이다. 단기·일시적 대응은 항상 부작용을 수반한다”며 “미래의 성장동력을 미리 땡겨 지금의 성장동력에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맞섰다.
그는 이어 “최근 경제위기 국면은 상시화·장기회 돼 감에 따라 위기대응 역량을 꾸준히 보강해나가면서, 긴 호흡으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개선하는 노력을 체계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직접적으로 ‘복지’란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으나, 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치권의 요구를 묵살하는 한편 복지와 관련한 사회적 비판 여론을 회피한 것으로 풀이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