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조의 유옥렬(39·현 대표팀 코치)과 여홍철(41·경희대 교수)는 각각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숙원을 풀어 줄 인물로 꼽혔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정작 올림픽에서는 태극기를 시상대 꼭대기에 올리지 못했다.
유옥렬은 올림픽에서 비장의 신무기를 선보인 비탈리 셰르보(독립국가연합)에게 밀려 아쉽게 동메달에 머물렀다.
점프력과 공중회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여홍철은 착지 때 세 발자국만 물러나도 금메달을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결승에서 하체가 무너지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恨) 맺힌 순간 두 선수 옆에는 조성동(65) 현 대표팀 총감독이 있었다.
40대 젊은 지도자로 대표팀에서 두 선수를 지도한 그는 두 번 모두 금메달을 확신했으나 그때마다 불운을 탓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후 서울체고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던 조 감독은 2010년 대한체조협회의 부름을 받고 다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협회가 금메달 전략 종목을 평행봉에서 도마로 선회하면서 조 감독은 도마 유망주를 발굴했고, 광주체고 2학년이던 양학선을 그해 말 성인 대표팀에 발탁하고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육성했다.
고교 시절부터 도마에서 두각을 나타낸 양학선은 ‘너무 일찍 기량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조 감독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비기를 서서히 공개했다.
2010년 처음으로 참가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도마 4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양학선은 곧바로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에서 적수를 찾지 못한 양학선은 난도 7.4점짜리 ‘양학선’을 앞세워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시상대를 점령하며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세계에 두터운 인맥을 자랑하는 조 감독은 세계선수권대회와 지난 5월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를 참관하면서 양학선의 경쟁자들의 전력을 면밀히 분석했다.
이후 태릉선수촌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양학선을 다그쳤고, 일정 기간마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평가전을 통해 양학선을 단련시켰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것을 빼곤 태릉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한 조 감독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지도자 인생 최고의 순간을 런던에서 맞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