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한중수교의 해인 1992년은 중국이 제2의 개혁개방을 선언하면서 중국경제의 성장엔진이 재차 폭발적인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 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난 1978년 설파한 개혁개방은 이 시기를 분기점으로 해 중국 경제 사회전반에 또 한차례 천지개벽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경제지표들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현재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서서히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며 세계 2대 경제체(G2), 세계 최대의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도약하고 나아가 세계 최고의 기술강국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지난 1992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던 해의 중국은 최소한 경제면에서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20년 만에 중국은 총량 면에서 미국을 뒤이어 G2로 떠올랐고 주요 산업면에서도 우리기술을 바짝 뒤쫓고 있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중국에 일어난 경제사회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1. GDP
1992년 2조2923억5000만 위안
→ 2011년 47조1564억 위안
중국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苗白描)’론을 기치로 내걸고 자본주의의 선진경험을 흡수, 대외개방도를 확대하는 정책기조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기존의 공유제 형태의 소유구조를 개별소유제로 전환하고 국가이익을 강조하던데서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혁신적인 제도개혁에 나선 것. 1980년 4월에는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등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대외개방의 창을 열었으며 1984년 IMF에 정식 가입, 2000년에는 WTO에 가입하는 등 경제발전을 위해 전략적, 적극적 행보를 보여왔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노력에 따라 중국 경제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개혁개방의 확대 심화의 해이자 한중수교의 해인 1992년 중국의 GDP는 개혁개방 1978년 3645억2000만 위안에서 2조6923억5000만 위안으로 뛰었으며 1992년 GDP 성장률도 10%를 훨씬 뛰어넘는 14.2%를 기록했다. 이후 1995년 6조793억7000만 위안에서 2005년에는 18조4937억4000만 위안으로 급증, 작년 2011년에는 47조1564억 위안에 육박하는 등 평균 10%의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11년 하반기 들어 글로벌 경기 악재의 영향으로 증가율이 8.9%로 추락, 2012년 1분기, 2분기 성장률이 각각 8.1%, 7.6%로 상반기 평균 7.8%를 기록해 최근 중국 중앙은행 및 정부의 경기부양조치가 쏟아지고 있다.
2. 통상 무역규모 급증
1992년 1655억2500만 달러,
→ 2011년 3조6420억6000만 달러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수출입규모, 즉 대외무역규모의 빠른 증가세는 중국 경제발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무역 규모가 증가하면서 관련 산업의 전방위적인 발전도 함께 동반됐다. 중국의 대외무역규모는 1978년 292억 달러에서 덩사오핑의 남순강화와 함께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본격화 단계에 들어간 1992년 1655억2500만 달러로 뛰어올랐으며 이후 시장체제가 확립되고 서방경제통상무역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면서 중국 무역규모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1조 달러를 훨씬 넘어선 1조42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1년에는 3조6420억6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20년간 중국 정부의 대외개방 정책을 견지하고 관련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각 분야의 기업이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발전의 흐름에 힘입어 중국은 세계 최대의 생산공장,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했으며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와 위상도 크게 제고됐다. 최근 글로벌 경제 악재로 조금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1~6월까지 올해 상반기 교역규모만 벌써 1조8398억4000만 달러, 수출이 9543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했으며 수입은 8854억6000만 달러로 동기대비 56.4% 증가했다. 지나친 흑자로 불균형한 모습을 보였던 무역수지가 중국 시장개방이 확대됨에 따라 서서히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3. 외환보유고
1992년 194억4300만 달러
→ 2011년 3조1811억 달러(3650조원)
중국의 개혁 개방 원년인 1978년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억6700만 달러(약 1800억원)에 불과했다. 이후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 초반까지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면서 1992년 시장개방이 본격화 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2년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94억43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후 수출규모 및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1996년 1000억 달러를 지나 1050억2900만 달러에 육박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6년에는 무려 1조663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1년에는 3조1811억 달러(한화 약 3650조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개방과 무역 및 투자규모 확대에 따라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면서 미국의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미국이 글로벌 위기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등 경기상황이 악화되자 보유외환자산의 가치하락을 우려해 자산보유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위안화의 국제통화로의 도약도 모색하고 있다. 아직 달러의 위세를 따라가기는 어려우나 아시아권 역내 주요통화로서의 입지는 확실히 다졌다는 평가다.
4. 환율(위안화의 대달러 환율)
1994년 달러당 8.7위안
→ 2012년 6월말 6.32위안
한중수교의 해인 1992년 중국 환율제도는 이중환율제였다.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전에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하의 계획환율제도를 시행했으며 서서히 무역거래가 시작ㆍ확대되던 1981년에서 1993년에는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이 결정하는 공정환율과 실제 외환거래시 적용되는 시장 환율이 공존하는 이중환율제도를 시행했다. 1993년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1978년 1.50위안에서 5.762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했으며 한중 수교가 있었던 1992년을 기점으로 대외무역과 투자가 급증하자 1994년 중국 중앙은행이 공정환율 5.7위안을 당시 시장환율인 8.7위안으로 통일하고 소폭 범위에서 변동을 허용하는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실시했다.
중국 정부가 환율 조정에 이렇게 깊게 개입한 것은 위안화의 절상은 수출기업에게 타격을 주고 지나친 절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경제성장에 비해 위안화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다고 주장하는 국가와 마찰이 심화되는 등 절상압력이 고조되자 2005년 결국 복수통화 바스켓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2007년 환율 변동폭을 0.3%에서 0.5%로 확대하고 2012년에는 0.5%에서 1.0%까지 확대해 변동환율제로 한발 더 다가갔다. 절상압력을 수용한 중국 정부의 조치로 2008년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6.82~83대로 조정됐으며 2012년 6월 말에는 달러당 환율이 6.3249를 기록했다. 중국 당국의 위안화 제도변화와 변동폭 확대는 시장에 따라 조정되는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자 위안화의 위상을 높여 기축통화로 거듭나려는 중국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5. 1인당 평균임금(연봉)
1992년 2711위안
→ 2011년 4만2452위안
** 1인당 GDP: 1992년 2311위안
→ 2011년 3만4574위안
중국 경제 및 각종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중국 근로자들의 임금 상황도 한중수교 및 그 이전의 개혁개방 당시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비록 CPI가 오랜 기간 10%대의 고성장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인 체감도는 다소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얼마 전 임금 상승률이 GDP 성장률을 넘어서는 등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 중국 도시 근로자 평균연봉은 615위안(한화 약 11만원)이었으며 이후 중국 경제가 시장개혁으로 새로운 발전의 호기를 맞은 1992년 평균임금은 2711위안,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해 1995년에는 5500위안까지 뛰어올랐다.
또한 개혁 개방 당시 중국 경제발전전망이 밝고 임금 수준이 여전히 미국의 40분의 1~50분의 1에 불과해 광대한 시장과 저렴한 인건비를 노린 폭스바겐, GE,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평균 연봉도 빠른 증가세를 보여 2005년에는 1만8364위안으로 껑충 뛰었으며 2011년의 평균 임금은 4만2452위안을 기록했다. 1인당 GDP도 1992년 2311위안에서 2011년에는 3만4574위안으로 증가해 중국 주민생활수준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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