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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베이CC 7번홀 티잉 그라운드. 홀인원 경품이 눈에 띈다. |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상금은 최대, 진행은 최악’
충남 태안의 골든베이CC(파72)에서 9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이 대회는 박세리(KDB산은금융그룹) 최나연(SK텔레콤) 유소연(한화) 지은희(캘러웨이) 장 정(볼빅) 김주연 등 미국LPGA투어프로뿐 아니라 김자영 양수진(이상 넵스) 김하늘 김혜윤(이상 비씨카드) 등 국내 톱랭커들이 출전했다. 총상금은 12억원(우승상금은 3억원)으로 국내 골프대회 가운데 가장 많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외양에 걸맞지 않게 대회진행은 엉망인데다 주먹구구식이었다. 첫 날 18홀을 플레이하는데 5시간30분이 걸린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만 했다. 사단은 둘쨋날 발생했다.
아마추어 서연정(대원여고)이 17번홀(길이168야드)에서 5번아이언으로 홀인원을 한 것이다. 이 홀에는 우승상금에 버금가는 시가 2억7700만원의 ‘벤틀리’ 승용차가 홀인원 상품으로 걸렸다.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아마추어가 홀인원을 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KLPGA가 배포한 대회 요강에는 ‘아마추어에게는 상금 또는 특별상(각종 기록) 등의 상금(상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있다. 당연히 서연정은 자동차를 받을 수 없었다.
KLPGA 경기위원회에서 아마추어에게 홀인원 상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으나, 영국왕립골프협회(R&A) 규정을 들먹이며 “자동차를 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R&A 규정에는 ‘아마추어도 한도에 상관없이 홀인원 상품을 받을 수 있다’고 돼있다. 그들의 주장은 “‘상위법’인 R&A 규정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R&A 규정이 그렇더라도, KLPGA에서 대회규정에 ‘로컬룰’을 명시했다면 이를 따라야 한다. 예컨대 ‘볼은 있는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이 골프의 대원칙이다. 그러나 미국PGA투어는 지면이 축축할 경우 ‘볼을 집어 닦은 후 놓고’(lift, clean & place) 치는 로컬룰을 둔다. 지금 열리는 BMW챔피언십 1라운드 때에도 이 로컬룰을 적용했다. 또 USPGA 주관아래 한달 전 열린 USPGA챔피언십에서는 모래로 채워진 지역을 ‘벙커’로 여기지 않고 ‘스루 더 그린’으로 간주하는 로컬룰을 택했다. 이에따라 선수들은 모래로 채워진 곳에서도 클럽헤드를 지면에 댈 수 있었다. 이처럼 주최측이 정한 로컬룰은 골프규칙보다 우선한다.
논란이 확산되자 스폰서이자 주죄측인 한화금융네트워크에서 나섰다. 고위층의 언질을 받았음인지, 한화측에서는 8일 “서연정에게 자동차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KLPGA와는 상의도 없이 독단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한화측 논리는 ‘규칙은 존중하지만, 홀인원 상품은 공식 상금이 아닌 흥행을 위한 이벤트 상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만저만한 억지가 아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주최측 임의대로 여자대회에 타이거 우즈를 초청해도 될까? 흥행을 위해서라면 갤러리들이 모이는 18번홀 그린에 홀을 두 개 뚫어놓아도 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아무리 돈을 대는 주최사 입장이 있다고 해도 대회 진행에 대해서는 KLPGA에 일임하는 것이 정도요 순리다. 더욱 3, 4라운드 때 프로골퍼가 해당 홀에서 홀인원을 할 경우 법적 공방으로 갈 소지도 있었다.
해프닝은 당사자인 서연정측이 4라운드를 앞두고 “협회의 규정을 존중하고 아마추어 정신에 입각해 상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단락됐다. 한화측만 머쓱해졌다.
한국골프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골프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버젓이 있는 규정을 무시하고 스폰서가 대회운영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은 월권이자 무지의 소산이다. 골프계의 ‘해외 화제’감이다.
유소연은 합계 9언더파 279타로 프로 3년차 허윤경(22·현대스위스)을 1타차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지난해 챔피언 최나연은 5언더파 283타로 공동 4위를 차지했다. 박세리는 2오버파 290타로 공동 11위, 김자영은 5오버파 293타로 공동 22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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