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주중문화원, 베이징 한국국제학교 별관, LG 중국 본사, 포스코차이나 본사, 베이징현대차 본사, 다롄 샤리(夏麗)골프장 클럽하우스, 외환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대우증권, 자하문, 서라벌, 파리바게트, 뚜레주르, 롯데리아 등 베이징의 우리나라 주요 업장의 인테리어는 모두 류현 천해성장식 사장의 손을 거쳤다. 천해성장식은 한국기업의 자회사가 아닌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시작한 기업이다. 류현 사장은 1994년 창업한 이후 18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으며 지난해는 매출 5000만위안(한화 약 90억원)을 올렸다. 그가 이정도 안정궤도까지 올라오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한양주택 계열사인 한양공영에서 근무하던 그는 1993년 과거 직장상사로부터 함께 베이징에 건너가서 건자재사업을 벌이자는 제안을 받는다. 해외생활에 대한 호기심에, 그리고 중국이라는 미개척지를 선점해보고 싶다는 욕구에 그는 베이징행을 결정하고 황해바다를 건너온다. 한중합작사인 천해공업에서 기술팀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이듬해인 1994년 인테리어 전문업체인 천해성장식을 창업했다. 당시는 베이징에 개인소유 아파트가 분양되기 시작하면서 주택인테리어 시장이 막 태동하던 때였다.
탁월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시장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인테리어 수요를 잡겠다는 목표아래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영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번번이 사기를 당하기 일쑤였다. 1997년에는 30만위안 상당의 에어콘 공사를 수주했었다. 에어콘을 공사장에 가져간 후 대금을 현장에서 지급받으면 설치를 시작하는 게 조건이었다. 현장에서 직원으로부터 은행계좌에 돈이 입금됐다는 말을 듣고 에어컨을 내려놓고 다음날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은행계좌에서 입금이 취소됐고, 에어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발주처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고소를 했고 법원으로부터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발주처의 오너가 도주한 후라서 돈을 받을 길이 없였다. 결국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이후 회사는 급격히 추락해갔다. 반년넘게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했고 수주도 뚝 끊겼다. IMF 금융위기가 겹쳐 파산 일보직전까지 갔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차량 인사사고까지 겹쳐 사업정리를 고민하며 피폐한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왔다. 한국업체의 베이징 사우나공사 인테리어 수주가 들어온 것이다. 이와 함께 때맞춰 여기저기서 귀인들이 나타나면서 사업이 풀리기 시작했다.
류현 사장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준비가 없었음을 깨달았고 이때부터 중국에 진출한 한국업체의 일만을 맡아서 하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는 충분히 준비가 됐다며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기업과 합작, 내수시장 개척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끝으로 자신의 중국생활 19년동안 목도한 중국인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중국에서 살면 살수록 중화사상의 깊이와 위력을 깨닫게 된다”면서 “중국인들은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며 최고민족이라는 뿌리깊은 자부심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소수민족은 물론 조선족 2-3세들 역시 이에 동화돼 있다”며 “경제적인 굴기가 지속되면서 중국의 중화사상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힘을 줬다.
◆주요이력 ▲1962년1월, 대전출생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인천기능대학(현 폴리텍 대학) 졸업 ▲1987년 한양공영 입사 ▲1993년 베이징 천해공업 기술처장 ▲1994년~현재 천해성장식 총경리 ▲2006년 베이징 실내장식협회 부회장 겸임 ▲2012년 재중국한국인회 부회장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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