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 뒤편에 대작(大作) ‘해돋이’ 작품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의 치열한 노동을 요구하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작품 재료가 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워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다”는 그는 “나는 대중적 공감을 중시 여기는 대중작가로 ‘미술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무척 좋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대 예술대 회화학과와 동대학원 서양화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폐책(廢冊)이나 색도화지 등을 수집하여 조형언어로 탄생시키는 이승오의 작업은 종이와 종이들의 유기적인 통합을 중시한다. 종이단면이 갖는 내추럴한 질박함과 표현성은 유머와 해학, 대상의 깊이감과 생동감을 자아낸다. 역사적으로 그 우수성을 입증 받은 한지(韓紙)의 질료적 우수성에서 영감(靈感)을 많이 받은 그는 종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화 대신 종이를 재료로 선택한 이승오(李承午) 작가. 그는 종이를 썰고, 붙이고, 마치 건축물같이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채워나가며 쌓는 형식의 표현을 추구한다. 때문에 작품들은 표현에서 감정이 드러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반복적으로 나열하고 비교충돌 행위가 가미된 극히 이성적으로 구축된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렇게 연출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은 선(線)의 결합이자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종이의 성질을 작품에 반영하는데 부조(浮彫) 효과와 마티에르(Matiere)적 입체적 감각표현이 두드러진다. 손으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공예적이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린 듯 회화적이나 결국 보여지는 현상은 조각적이다.
이승오는 지난 2004년 ‘예술의 전당 젊은 작가’에도 선정된 바 있는데 종이를 정교하게 잘라 거장들의 명화(名畵)나 풍경과 정물을 구성했다. 고흐, 샤갈,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겸재 정선 등 동서양 미술사를 통해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을 그만의 방식으로 이끌어 가고 승화해 재탄생시키는 일종의 풍자화(諷刺畵)를 정신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원화를 떠올리며
그의 그림을 대할 때 관람자들이 ‘오오!’라며 놀라는 것도 독특한 작업의 창작세계 특성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위대한 산물들인 명작들을 단순 카피(copy)에서 벗어나 종이라는 소재로써 대중과 거부감 없이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소위 ‘패러디(parody)’라는 형식을 이용한 것인데 관객을 유도하고 접근이 쉬운 코드로써 소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그의 작업적 성과는 지난 2006년 봄 그리고 2007년 봄과 가을에 연속으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하여 낙찰 받는 쾌거를 올렸고 2008년에는 ’폐지나 종이의 단면을 이용한 회화표현’으로 특허도 받았다.
캠벨수프 |
그는 최근작에서 ‘캠밸수프’ 통조림을 작품 소재로 선택했다. 대량생산과 소비라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연속성과 반복성의 상징으로 핸드메이드(handmade)라는 그만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금강산 |
또 ‘금강산’에서는 바위와 나무와 산과 골짜기 등 한국의 산을 마치 탐험하고 체험하듯 많은 물량의 갖가지 종이를 활용하여 그만의 준법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반가사유상 |
‘미륵반가사유상’은 종이라는 매재(媒材)를 이용하여 평면적 행위를 통해 조각적 입체를 표현한 작품으로 입체감을 느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러하듯 이승오 작품에는 한국적인 고유한 정서의 재발견과 맥락(脈絡)이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유화(油畵)의 권위와 엄숙함에 도전하고 21세기 디지털 문명시대에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종이의 재발견을 통해 계몽적이며 혁신적인 신선한 흥미와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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