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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8> 눈부신 성적표 후진타오 집정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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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1-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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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배인선 기자 = 지난 10년동안 중국을 이끌어온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오는 8일 개최되는 제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끝으로 공산당 총서기직을 시진핑 부주석에게 물려주게 된다. 후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당대회에서 마지막 업무보고를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공산당 서열 1위였던 후 주석의 시대가 저물게 되는 것이다. 다만 후 주석의 집정이념이었던 과학발전관은 공산당 당장에 '지도이념'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이에 본지는 중국공산당 16기와 17기를 주도해온 후 주석 10년 집정기(2002~2012년)의 평가를 10가지 키워드로 제시해 본다.

◆G2,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굴기

후 주석 집정 10년 최대의 치적은 단연 경제성장을 통한 중국 굴기다. 후 주석은 그동안 경제분야의 사령탑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쌍두체제로 거의 매년 두자릿수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넘나들면서 2003년 GDP기준 세계 7위였던 중국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2위 경제대국으로 올렸다. 1997∼1998년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휩쓸고 2008년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돼 지금까지도 세계 경제가 비틀대는 가운데 이룬 실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작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는 6조9천880억달러로 미국의 15조650달러의 50% 수준에 육박했고 외환보유액은 3조2360억달러로 세계 최대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은 경제적인 굴기를 바탕으로 군사 외교 분야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우주선에 항모까지, 매서운 군비확장

올해 중국은 지난 9월25일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을 취역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중국의 항공모함은 군비확장측면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준비돼온 작업이었으며 후진타오 집정시대에 비로소 꽃을 피운 셈이다. 이 역시 후 주석의 치적으로 중국역사에 남을 것이다. 항공모함 운영능력이나 작전능력이 뒤쳐진다는 비난이 있지만 중국은 차곡차곡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항공모함 랴오닝함에서 첫 탑재기 이착륙 훈련을 실시됐다. 훈련에 임한 탑재기는 중국 공군의 자랑인 젠(殲)-15(J-15)였다. 이와 함께 독자적인 스텔스기인 젠-31도 시험비행에 나서는 등 군사적인 굴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눈부신 우주기술 발전도 후주석의 치적이다. 지난해 자동도킹에 성공한 중국 유인우주선인 선저우(神舟)9호는 지난 6월 수동도킹에도 성공했다. 이어 중국은 내년 선저우 10호를 쏘아올릴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양대 '슈퍼 강대국'으로 도약.

중국의 태평양 진출 강화는 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진출하려는 지역은 모두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원이 매장돼 있어 중국은 이들지역을 핵심이익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과거같았으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용한 협상을 추구했겠지만 급성장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은 태평양 패권을 두고 강경한 행보를 이어갔다. 중국은 일본과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베트남과는 난사(南沙) 및 시사(西沙)군도, 필리핀과는 스카버러 섬을 놓고 대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로 인해 당사국들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분쟁대상국들은 미국을 끌여들여 대항하고 있지만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은 역내에서만큼은 미국에 맞서 만만챦은 외교력을 발휘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쑨즈강, 류샤오보, 천광청 인권논란

정치, 경제, 외교, 군사분야에서 중국은 눈부신 굴기를 거뒀지만 개선되고 있지 않아보이는 인권문제는 중국의 발전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후진타오 집정시기에도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며 정권의 도덕성에 발목을 잡았다.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틀 뒤인 2003년 3월17일 27세의 쑨즈강(孫志剛)이 공안의 불심검문으로 체포된 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중국 인권의 현실을 드러내는 사례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반체제활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수상을 막은 사례나 올해 벌어진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씨의 미국대사관 피신 사건 역시 전세계에 중국 인권의 한계를 드러냈다.

◆최대 정파 공청단파의 부상

2002년 후진타오가 공산당 총서기에 등극하면서부터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라는 정파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공청단은 13세부터 28세까지의 청년들이 소정의 절차만 거치면 가입할 수 있는 공산당 하부조직이다. 후진타오는 1980년대 초반 공청단의 지도부인 공청단 중앙 제1서기를 역임했었다. 당시 사회의식이 있는 양질의 정치지망생들은 공청단 지도부로 몰렸었고 후 주석과 함께 근무했던 정치인들이 하나둘 요직에 발탁되면서 거대한 파벌을 만들게 됐다. 후주석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상하이방의 거센 견제로 자신의 정책을 펴는데 제약이 많았던 후주석은 공청단파라는 든든한 지원군의 힘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지도력을 투사했다. 대표적인 공청단파 정치인으로는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조직부장,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부장,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 서기 등이 있다.

◆천량위, 보시라이. 정치투쟁

모범생처럼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후진타오 주석은 치열한 당내투쟁속에서도 과감히 정적들을 제거하며 자신의 정치력을 공고히 해왔다. 그는 2007년 17차 전국대표대회를 1년 앞둔 2006년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서기를 수뢰죄로 낙마시키며 반대정파인 상하이방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천량위를 겨눴던 칼끝은 역시 상하이방인 황쥐(黃菊) 상무부총리를 향했지만 황쥐는 이듬해 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후주석은 17차 당대회에서 자파 정치인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를 낙마시키며 좌파의 재등장에 쐐기를 박았다. 천량위와 보시라이는 모두 공산당 중앙위 정치국위원으로, 모두 당내 서열 25위 이내의 막강한 실력자였다.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면서도 선을 넘어선 정치거물들을 과감하게 낙마시키며 후진타오 주석은 지도력을 유지해왔다.

◆사회주의 빈부격차, 깊어가는 모순

후진타오 시대의 10년은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눈부신 업적과 함께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 확대라는 그늘을 남겼다. 분배구조 개선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후 주석의 집권 초기인 2003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지니계수(소득 분배 불균형 수치)는 위험경계선으로 분류되는 0.400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후 급격히 악화되며 현재 0.550 선으로 사회 안정이 위협받는 0.600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중국 소득 상위계층 10%와 소득 하위계층 10%의 격차가 1988년 7.3배에서 현재 23배로 대폭 확대됐다. 빈부격차는 자연스레 사회갈등으로 이어진다. 하루평균 490건 가량 발생하는 시위 역시 빈부격차현상과 무관치 않다. 소득의 균등분배와 민생개선이 중국사회 최대의 과제로 대두됐지만 이제 이는 시진핑의 몫으로 남게 됐다.

◆'3차 국공합작',최고 밀월기의 양안관계

후진타오 시대 후반기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관계가 최고의 밀월기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친중국 성향의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집권한 이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아래 정치적 접근보다는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확대를 추구하면서 양안 관계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지난 2010년6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이래 중국과 대만 관계는 자유화 품목 95% 무관세화, 대만의 중국인 여행객 제한 완화, 항공·해운 직항 증편, 대만인의 중국 개인 사업자등록 허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보였다. 이에 따라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09년 97만 명, 2010년 163만 명, 2011년 180만명으로 매년 증가했으며, 올해는 중국인 관광객 200만 명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9년 6월 30일 대만이 중국 대륙 기업의 대만 투자를 허용한 이래 올해 5월까지 중국 기업인은 대만에 총 2억9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양안 간 경제국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차이완(차이나+타이완)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계속되는 공산당의 숙제, 12.5규획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고속경제 개발에 따른 후유증으로 빈부격차, 지역격차, 부패확산 등의 문제가 악화됐다. 이에 따라 12차5개년 규획(12.5규획)은 경제발전 방식 전환과 산업 구조조정, 소득불균형 해소, 민생개선 등을 통한 경제의 ‘질적 성장’에 중점을 두고 계획됐다. 12.5규획 자체는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발전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경제위기로 인해 수요가 급감하는 등 경착륙 우려가 깊어지면서 12.5규획의 순항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분위기다. 외부수요가 부진한 환경에서의 조정정책이 자칫 경착륙과 사회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같은 환경에서 중국은 '미세조정'이라는 표현으로 조정정책을 유지하되 부분적인 확장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의 실효성은 현재 학계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13억 민의와 정치개혁

후진타오 주석은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공작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발전은 공산당의 시종 변하지 않는 목표”라며 이를 위해 정치개혁을 심화시키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후 주석은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기념식에서 당이 정한 노선에서 벗어나 무리하게 실험적 정치개혁을 실시하면 인민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하며 속도조절을 당부했다.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는 최근 ‘후진타오 정치유산’이란 논문을 통해 중국이 고조되고 있는 민주화 요구를 폭넓게 포용할 수는 없지만 정부에서 최소한 정치개혁을 펼치기 위해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성의 표시는 대중에게 보여줘야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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