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아주중국> ‘중국 공산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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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11-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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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재현 전북대 교수(전 칭다오 총영사)


수년 전 필자가 중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중국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한 여직원이 일어나 열창을 한 노래가 있었다. 제목은 ‘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 즉 ‘공산당이 없었다면, 지금의 신중국도 없었을 것이다’는 의미의 노래로 중국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배우고 불러오는 노래다. 그 노래 제목을 그대로 원용한 붉은 색 플래카드가 중국 도처에 나부끼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생각해 보았다. 정말 중국대륙에 공산당이 없었더라면 중국이 지금 같은 경제 기적을 이루며 국제무대에서 부상(浮上)하지 못하였을까? 중국 공산당의 일당 장기집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11월 향후 10년 중국을 이끌 공산당 지도부 개편을 앞두고 세계의 관심이 중국을 향해 쏠려 있다. 중국공산당 영도하의 현 중국의 국제위상을 살펴보고, 중국공산당 장기집정의 힘과 비결, 앞으로의 전망을 가늠해 본다.

◆ 중국공산당과 중국의 국제위상
중국공산당은 1978년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 30년 간 세계 제일의 인구대국을 이끌며 연평균 10%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구가하여 왔다. 정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로 중국은 2010년 말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G2)의 반열에 올라섰다.

중국은 작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7조2900억 달러에 세계 수출 1위국(1조8900억 달러), 외환보유고 세계1위국(3조2100억 달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휴대폰, TV 등 주요 공산품의 생산과 판매 부문에서 세계 선두 자리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각국에 판매의 장을 제공하는 ‘세계의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주요 내구성 소비재 항목에서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시장으로 부상했다. 한편 중국은 2003년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인 선저우(神舟) 5호 발사에 성공한 후 지속적으로 우주 개발에 노력하여 올 6월에는 선저우9호 유인 도킹에 성공함으로써 우주정거장 시대를 열고 세계 3대 우주 강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또한 중국은 군사 분야에서도 2008년 이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둥펑(東風) 등 신형 미사일 개발과 바랴그(Varyag) 항모 건조 등 장거리투사 무기체계 개발을 서둘러 군사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지속적인 성장의 결과, 일부 국제평가기관들은 2016년에서 2020년 사이에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2004년 제기된 중국식 발전모델인 ‘베이징컨센서스(Beijing Consensus)’가 지속 거론되고 있는 것도 당연한 것 같다.

◆ 공산당 장수의 비결-변화와 변신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끝없는 변화과 혁신의 역사이다. 중국공산당이 창당 이래 90여 년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가장 큰 요인의 하
나는 그들이 시대 흐름에 맞춰 유효한 전략적 변신을 거듭해 왔고 이를 통해 정치 안정을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은 도시지역의 노동자 대신 농민 중심의 당을 건설하여 농촌을 통해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적 혁신을 통해 대륙에서의 정권 창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마오의 대약진운동 실패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은 “검은 고양
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 을 제기한 바 있다.

마오의 사망 후 덩샤오핑 주도로 진행된 변화와 혁신은 색깔은 달랐지만 그 정도는 마오 시기의 그것보다 파격적인 것이었다. 혁명 대신에
발전이 중국의 당면과제로 제기되었고, 사상 대신에 실천이 진리를 판단하는 최선의 기준이 되었다.

1982년 중국공산당 제12차 대회시 덩샤오핑은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적 진리와 중국의 구체적 현실을 결합하여 중국의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요지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1885년 덩샤오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력이 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라”는 소위 ‘선부론(先富論)’을 제기했다. 1992년 초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생산력 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 유리하다면 자본주의적인 것까지 모두 사회주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설파하였다. 덩샤오핑의 정책을 이어 받은 장쩌민(江澤民)은 2000년 2월 광둥성을 시찰하며 ‘3개대표이론(三個代表理論)’을 제시하였다. 공산당이 ‘선진생산력, 선진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당이 대표해야 할 계급이 노동자·농민에서 기업인·자본가·지식인 등으로 확대되었다. 글로벌시대에 적응하려는 공산당의 자기 변신의 표현으로 평가된다.

한편 2002년 장쩌민으로부터 권력을 넘겨 받은 후진타오(胡錦濤)는 유가의 이념인 ‘화해(和諧)’사회와 새로운 발전 구호인 ‘과학적 발전관’을 제시했다. ‘과학적 발전관’은 ‘인간중심’의 발전과 사회의 균형 발전 및 지속가능 발전을 추구하며 성장 우선 정책이 초래한 후유증을 치유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됐다.

◆ 집단지도체제의 경쟁력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 모든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상무위원(현재 9인) 간에 권력서열은 있으
나, 주요 정책이나 요직에 대한 인사시 동일한 권리를 행사하는 소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독자적으로 또는 형식적 협의를 거쳐 후계 지도부를 결성함에 따라 권력 승계와 정책노선을 둘러싸고 투쟁이 전개되
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장쩌민의 후임인 후진타오 집권 이후부터는 지도부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 정치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높아졌다. 현재 중국 정치는 소위 상해방(上海幇), 공청단(共靑團), 태자당(太子黨) 등의 계파가 상호 견제를 하면서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정치 무대에서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같은 카리스마적 조정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리트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는 상호간 때로는 합종연횡하며 경쟁하면서도 결국 타협하고 협력하는 보이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고 있다.

중국 정치의 특성 중 하나는 후계자가 전임자의 노선을 최대한 떠받든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상’을 부정하지 않았다. 장쩌
민은 ‘덩샤오핑 이론’을,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3개대표이론’을 옹호하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차세대의 선두주자인 시진핑(習近平)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후진타오의 치국 이념인 ‘과학적 발전관’을 항상 강조하고 다닌다.

물론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이전 세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그 방식이 전임자에 대한 부정보다는 보완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성격은 중국 정치 체제의 최대의 특징이며 강점의 하나다.

◆ 집정 능력의 토대- 엘리트 당원의 충원과 양성
중국공산당이 장기간 안정을 유지하며 집정 능력을 증대시켜 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중국 공산당이 그간 유능한 엘리트 당
원의 충원과 양성에 성공해 왔다는 점이다. 필자는 중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공산당원들을 접촉해 왔다. 이들과 만날 때마다 받은 공통된 느낌 중 하나는 이들 대부분이 상당히 해박하고 논리가 정연하다는 점이었다. 한국 방문객을 접견할 때는 한국과 관계되는 많은 통계 자료를 외워서 장시간 원고 없이 발언하기도 한다. 이들은 정말 많이 공부하고 또 매사에 철저히 준비한다는 느낌이었다.

1921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의 한 허름한 건물에서 비밀리에 출범한 중국공산당이 올해로 창당 91주년을 맞았다. 당시 겨우 57 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남북한 인구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8260만 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 당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 신청한 2160만명 중 316만명만이 받아들여졌다. 전체 당원 중 35세 이하의 당원이 전체의 약 25%, 여성 당원이 약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졸 이상이 38%로 나타났다.

공산당에 입당하기 위해서는 ‘입당신청서’를 제출한 후 당의 각종 교육과 훈련에 참가하는 등 1~2년 정도의 엄격한 검증 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선발된 공산당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당의 예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에도 많은 우수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약 8000만명의 단원을 보유하고 있다. 14세부터 28세까지의 청년 조직인 공청단의 단원들도 후진타오를 비롯하여 현 중국을 이끌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공청단 출신인 것에 대해 커다란 긍지를 느끼고 있다.

◆ 공산당 집정능력 향상의 비결-끊임 없는 학습
중국 정부의 간부들을 면담하려는 외국인들이 대상 인사가 장기교육 중이라는 말을 듣고 당황해 할 때가 종종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공산당의 지도부와 당원들은 치열하게 학습하고 훈련 받고 있다. 그들은 당의 집정능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지도자의 자질 향상에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평생학습을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당 간부 교육을 위해 중앙당교(黨校)와 5개의 교육·훈련 학원으로 이루어진 ‘1교5원(一校五院)’이라는 교육 시스템을 가
동 중이다. 특히 중앙당교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두뇌집단으로 현 교장은 시진핑이 맡고 있고 후진타오도 당교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은 국가 경영에 있어서 현장 경험을 특히 중시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간부들을 정기적으로 다른 부처에 보내 근무토록 하거나 지방이나 기업으로 파견해 일정 기간 삶의 현장을 익히게 하는 ‘괘직단련(掛職鍛煉)’도 중국공산당의 독특한 학습법의 하나이다.

◆ 공산당 안정화의 과제-당내 민주화
정치개혁문제는 중국공산당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과제의 하나이다. 1987년 제13차 당대회에서 당·정분리와 같은 급진적 정치개혁
방안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1989년 톈안먼사건과 1991년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급격히 목소리를 잃어 갔다.
본격적 정치개혁에 대신하여 중국공산당은 법률과 당규를 이용하여 공산당 운영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갔고 수많은 당규가
제정 및 수정되었다.
중국공산당이 본격적인 정치개혁 대신 선택한 또 하나의 변화는 당내 민주화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5년에 한번 개최하는 당대회를 매년 개최하여 당원들의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를 확대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부 향·진(우리의 읍·면) 등 기층 단위에서는 그간 당서기를 현·시의 상급 당위원회에서 임명하던 제도를 개선하여 일반 당원과 주민에게 당 간부 추천권을 주고 선발도 당원대회에서 직접투표를 통해서 하는 등 민주적 운영 절차를 도입한 바 있다. 당내 민주화의 하나의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 중국 공산당의 미래-도전과 대응
‘100년 정당’을 앞두고 있는 중국공산당은 현재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내적으로는 격차와 불균형 문제, 부정·부패문제, 점증하는 민주화의 요구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정치적 시각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격차와 불균형 문제이다. 소득의 불평등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의 경우, 중국은 1978년 0.18에서 2010년에는 위험수준인 0.4를 훨씬 상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도·농 간 소득격차의 경우, 1983년에 도시소득은 농촌소득의 1.8배 정도였으나 2010년에는 3.3배 수준으로 확대 됐으며, 지역 간 임금격차도 2010년 경우 동부가 서부의 평균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격차는 평등이 최고의 미덕으로 강조되었던 마오(毛)시기를 경험한 중국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격차와 불균형 문제 대응을 위해 중국 정부는 고심해 왔다. 현 후진타오 정부도 기존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성장위주 정책이 야기한 불평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고, 시진핑 등 제5세대 지도부 역시 우선 민생 안정에 주력하기 위한 소득분배 방안을 집중 모색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9월초 당 기관지 ‘구시(求是)’에 기고하여 “앞으로 10년을 공동부유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하였다. ‘공동부유사회’의 실현을 향후 신지도부의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산당이 대내적으로 직면한 또 하나의 심각한 사안은 부정·부패 문제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중국의 부패지수 순
위는 182개국 중 75위로 나타났다. 매년 수많은 공산당원이 부패문제로 인해 출당을 당하고 이 중 일부 심각한 경우에는 극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중국 지도부도 부정·부패 대처문제를 향후 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척결을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체제 성격상 감독기능이 미약하고 효율적 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많은 경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처로 끝나고 있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정치개혁과 민주화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공산당 지도부는 물론 다수의 중국 지식계 인사들도 중국의 정치개혁은 서구모델과 다른 자신들의 독자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앞으로 신 지도부의 영도하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양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실질적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공산당과 형식적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약칭 전인대:우리의 국회)와의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의 함의(含意)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공산당 지도부 개편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의 미래와 관련하여서도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신 지도부가 앞으로 일정수준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가면서 분배 문제와 부정부패 문제, 그리고 민주화 문제 등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면 중국공산당이 장기적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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